K9의 교훈: 전투복은 ‘부드러움’이 아니라 ‘생존’을 입혀야 한다.
작성일 : 2025.09.14 01:19 수정일 : 2025.10.12 08:36 작성자 : 스파르탄 (외부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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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RE-TEX PYRAD®는 W. L. Gore & Associates사의 기술로, 불꽃(fire)·플래시 파이어(flash fire)·열(flame/heat) 노출에 대해 보호 기능을 제공하면서도 기존 난연 원단보다 경량성과 착용 편의성을 개선한 복합 원단 기술이다. 이 기술을 적용한 피복으로 화염시험을 하고 있다. ⓒ W. L. Gore & Associates, Inc. |
① Protection이 왜 중요한가? ② 방탄헬멧 ③ 아이프로텍션 ④ 이어프로텍션 ⑤ 방탄복
⑥ 전투복 난연체계 ⑦ 전투복 위장체계 ⑧ 방한피복체계 ⑨ 화생방위협보호체계 ⑩ 전투화
2017년 강원 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한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K9에서 유사 사고가 재발했다. 군 조사와 언론 보도는 격발계통 부품의 결함과 화재로 인한 급격한 연소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장비 신뢰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화염 속에서 전투복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불길 속에서 옷이 녹아 피부에 달라붙으면 2차 화상으로 피해는 순식간에 커진다.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전투복 난연체계를 ‘선택’이 아니라 ‘기본’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한국군 전투복은 오랫동안 폴리에스터/레이온 혼방(T/R)을 중심으로 제작돼 왔다. 하계 전투복은 T/R 70:30, 사계절 전투복은 폴리에스터/면 혼방(P/CO) 73:27 비율로 보급된 바 있으며, 군납 원단으로도 T/R 전투복지가 꾸준히 조달되고 있다. 그러나 폴리에스터는 고온에서 녹아 흘러내릴 위험이 있고, 레이온은 난연성이 낮을 뿐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 사용되는 이황화탄소(CS₂)가 환경과 산업 보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왔다. 평상시에는 착용감이 부드럽고 통기성이 좋을지 몰라도, 화염 앞에서는 치명적으로 취약하다. 전투복의 기준은 ‘편안함’이 아니라 ‘생존’으로 돌아가야 한다.
해외군의 기준은 한국군과 확연히 다르다. 미 육군의 전투복(ACU)은 기본형이 비(非)난연 50/50 나일론/면 혼방(NyCo)이지만, 실제 배치 병력에게는 난연형 전투복(FR-ACU)을 지급한다. 미 해병대는 난연 전투복 체계(FROG)를 운용하는데, 이는 장비와 임무 환경에서의 화염 노출을 전제로 설계됐으며, 관련 문서와 정책이 보급·회수·유지까지 뒷받침한다. 특히 이들은 ‘원단 한 장’의 성능만 보지 않는다. 착용 체계 전체(base–mid–outer)를 ASTM F1930 마네킨 화염 시험으로 평가해 예상 화상률을 수치로 관리하고, ISO 11612 화염·열 보호 표준을 적용해 조달 규격을 국제 표준으로 일원화한다. 이렇게 표준–시험–조달–운용이 일관되게 연결될 때, 병사의 생존성은 실질적으로 향상된다.
기술적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확장 불소수지(ePTFE) 적층(laminate) 원단에 GORE-TEX PYRAD® 기술을 적용하면, 화염 노출 시 순간적으로 탄화 보호층이 형성돼 불길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이 방식은 방수·방풍·투습 성능에 더해, 경량성과 고열 보호까지 동시에 확보한 대표적 사례다. 제조사 자료와 운용 보고 역시 플래시오버 이후 자소(自消, 스스로 꺼짐)·무용융·저수축 특성을 입증하고 있으며, 군과 산업 분야에서 널리 채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품 원단의 수치가 아니라, 실제 착용 체계 전체에서 검증된 성능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부드러움’ 위주의 편견과 조달 관성에 있다. 폴리에스터는 고열에 노출되면 녹아 흘러내릴 수 있고, 일반 레이온은 난연성이 낮아 화염 앞에서 취약하다. 반대로 나일론/면 혼방(NyCo)은 면 성분 덕분에 불에 닿아도 녹아내리거나 흘러내리지 않는(no-melt/no-drip) 특성을 지니며, 임무 성격에 따라 난연(FR) 섬유나 라미네이트를 더해 성능을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고 시험하느냐’이며, 그것이 곧 장병의 생존을 결정짓는다.
이 다섯 가지만 지키면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
첫째, 목표를 수치로 선언해야 한다.
조달 문서에는 한국어로 명확히 다음과 같이 기재해야 한다. ‘완성복은 ASTM F1930 조건에서 예상 화상률 X% 이하, 자소(自消) 특성 유지, 무용융·무적하일 것, 세탁·오염 후 재시험에서도 동일 기준 충족.’ 이 단 한 줄만 명확히 적혀 있어도, 산업계는 연구와 설계를 그 기준에 맞춰 진행하게 된다.
둘째, 고위험 임무에는 ‘난연 다층 착용 체계(기본 세트)’를 표준화해야 한다.
포병, 장갑차 승무원, 항공 정비 및 연료 취급 병력에는 난연(FR) 3단 착용 체계를 기본으로 적용해야 한다. 즉, 난연 베이스레이어(속옷)–난연 상·하의–난연 외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외피는 방수·투습 기능을 가진 확장 불소수지(ePTFE) 적층(laminate) 원단에, 난연 반응층(PYRAD® 등)을 결합한 검증된 소재를 채택해, 젖음·바람·불꽃 노출을 동시 제어해야 한다.
셋째, ‘원단 시험’이 아니라 ‘착용 시험’을 해야 한다.
초도 납품과 정기 품질검사 과정에서는 ASTM F1930 마네킨 화염 시험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 ISO 11612 화염·열 보호 표준을 조달 문서에 함께 표기하면, 서로 다른 제품도 동일한 국제 기준으로 비교·평가할 수 있다.
넷째, 승무원 난연복의 색상·식별을 통일해야 한다.
승무원 난연복의 색상과 표식이 제각각이라면, 보급 과정은 혼란스러워지고 식별은 어려워지며 사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일본 소방청 사례처럼 착용 지침, 세탁 방법, 보수 절차까지 하나의 문서로 통합해, 규격–운용–유지 관리를 일체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즉시 시행 가능한 우선조치는 다음과 같다.
① 포병·장갑차·항공 및 연료 취급 부대에는 난연(FR) 다층 착용 세트(레이어드 킷)를 우선 지급해야 한다. ② 사격 및 정비 훈련 시에는 난연 베이스레이어(속옷) 착용을 의무화해야 한다. ③ 부대별 ASTM F1930 화염 시험 성적표를 보안 범위 내에서 공개해, 성능이 검증된 우수 제품이 선택받는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팩트체크! 왜 레이온(비스코스)이 논란인가?
레이온은 ‘천연 섬유’가 아니라, 목재 펄프를 화학적으로 처리해 만든 재생 섬유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이황화탄소(CS₂)는 신경계, 심혈관계, 생식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어 왔다. 국제 연구와 일본의 규제 문헌, 그리고 시민사회 보고서들은 오랫동안 비스코스 생산이 환경과 산업 보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지적해 왔다. 따라서 군이 지속가능성과 임무 수행의 안전성을 중시한다면, 고위험 임무에서 레이온 혼방 전투복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K9 사고의 비극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체계가 부재했던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드럽고 질긴 일상복 같은 군복’이 아니라, ‘불길 속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전투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표준(ISO 11612·ASTM F1930)에 맞춰 기준을 전환하고, 착용 체계 시험을 의무화하며, 고위험 임무부터 난연 장비를 보급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지켜질 때, 다음 사고의 피해 양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병사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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