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근동 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3천여 년이나 지속되었다. 주로 유프라테스강(Euphrates)과 티그리스강(Tigris) 사이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유다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직접적 배경이 되었으며, 고대 인도 종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작성일 : 2026.05.15 12:08 수정일 : 2026.05.16 12:19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주원준의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을 읽고
저자 주원준은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로서 히브리어, 고대근동어(수메르어, 아카드어, 우가릿어 등), 구약성서, 고대근동의 종교, 유다교 등에 조예가 깊은 학자다.
기원전 4세기 Alexander 대왕이 그리스에서 출발해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서북부까지 정복하면서 그리스 문화가 확산되었다. 이것이 동방 문화와 결합하여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기독교의 뿌리인 헤브라이즘(Hebraism)이 결합하여 서양사, 나아가서 세계사가 시작된 것으로 우리는 배웠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적인 문명이 있었다. 기원전 3500년부터 기원전 300년 경 까지 3000여년 간의 고대근동(ancient near east)역사가 그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역사는 기원전 3500년, 즉 5500여년 전의 인류 최초의 역사이지만, 학자들이 가장 늦게 19세기에 겨우 연구를 시작한 역사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19세기 중반에야 이 지역의 수메르 문자와 아카드 문자 등 쐐기문자가 해독되면서 연구가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여러가지 유물과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수메르, 아카드 문자 등이 토판에서 발견되고 있다. 유물과 문자는 단순한 신화가 아닌 역사적 문명으로 인정받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인류최초의 문명이 바로 고대근동 역사다.
이 책은 ‘그리스 이전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역사적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하면서도 그 해석과 의미를 쉽고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대근동 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3천여 년이나 지속되었다. 주로 유프라테스강(Euphrates)과 티그리스강(Tigris) 사이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유다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직접적 배경이 되었으며, 고대 인도 종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한국의 역사학계는 이토록 오래된 고대근동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러한 무지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학자가 바로 주원준 박사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기원전 4000년대 중반 즈음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르크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가 출현하면서 시작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그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우르크 현상’이다. 인류 역사의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최초로 시작된 문명, 즉 3000여년 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아카드→신수메르→고바빌로니아→아시리아→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로 이어지는 국가들이 차례로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이 시기 이집트는 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기나긴 역사를 개관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먼저 이스라엘 유대교,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카드 제국의 정복왕 사르곤의 전설, 함무라피 법전의 돌비석, 길가메쉬 서사시 등을 주의 깊게 알아보면 성경이 인류 최초의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개 갸우뚱하게 된다.
기원전 23세기경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왕(Sargon of Akkad) 설화는 모세의 출생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금지된 사랑을 했던 여사제가 사르곤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사르곤을 몰래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역청을 바른 갈대 바구니에 아이를 담아서 강에 띄워 보냈다는 내용이다. 모세가 활동했던 시기가 기원전 15세기경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한 함무라피 법전이 기록된 돌비석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Mount Sinai) 정상에서 신으로부터 직접 십계명을 받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길가메쉬 우트나피슈팀의 홍수 이야기도 구약성경의 노아 방주와 매우 비슷하다.
< 함무라피 법전이 기록된 돌비석 >

위의 서로 유사한 이야기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논리는 무엇일까? 성경의 저자(기자)들이 주변국가에서 회자되었던 설화나 전해오던 서사시를 인용하거나 비슷하게 각색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를 전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주변국의 설화를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각색하여 사용했다면 거기에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영웅 탄생 프레임을 빌려와서 성경을 썼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모세는 평범한 아이가 아닌 하나님이 예비하신 특별한 지도자임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 외에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양 끝의 강대국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사이에 끼여 괴롭힘을 당했던 유다가 결국 신바빌로니아에 의해서 기원전 6세기에 패망하게 된다는 내용이 소개된다. 유다인의 바빌론 유배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스라엘 유다교의 발전이 바빌론 유배를 통해서 바빌로니아 선진문명과의 연관성 속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바빌로니아에게 나라를 잃은 유다인은 세 부류로 갈라졌다. 일부는 이집트로 갔다. 일부는 팔레스티나 본토에 남았다. 일부는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야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왜 하나님 백성의 나라가 무너져야 했는지를 뼈저리게 성찰하면서 신학적 사유에 깊이를 더 해 갔다.
낯선 땅에서 처참했던 백성 유대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신학적 성찰 위에 유일신론(monotheism)을 발전시키고 이스라엘 종교의 갱신을 향한 초석을 놓게 됐을 것이다. 성경이 더 높은 단계로 완성됐을 것이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난과 약함을 통해 죄를 깨닫고 통렬하게 참회함으로써 새롭게 체득한 신앙적 진리가 유다교의 뼈대를 이루게 됐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전해졌던 고유한 유다교 전승을 새롭게 해석하고 소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유다교가 일대 도약을 이루었을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최초의 문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오랫동안 묻혔던 이유를 살펴보자.
고대근동사의 막바지에 이르러 메소포타미아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신바빌로니아는 신흥 강자인 페르시아 제국에 무릎을 꿇고, 이 지역은 페르시아의 세상이 된다.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까지 220년 간 지속됐던 페르시아도 기원전 330년경 그리스 Alexander 대왕에 의해서 몰락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패망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엄청난 불연속성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고 인류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했다.
페르시아가 멸망한 이후에도 수메르-아카드 세계의 문헌을 필사하고 연구하는 소수의 전문가들은 명맥을 이었지만, 헬레니즘이 확산됨에 따라 고대근동 3천 년의 문명은 점차 잊혀 지게 됐다. 이 지역은 그리스 지배 이후 로마의 손으로 넘어갔고, 이어 그리스도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에 의해 차례로 지배를 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된 인류최초 문명사이면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19세기에야 연구가 시작된 아이러니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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