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화는 싸게 사는 물건이 아니다: 장병의 발, 조달제도, 그리고 전투력
작성일 : 2026.05.10 10:19 수정일 : 2026.05.10 10:28 작성자 : 스파르탄 (외부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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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간 행군 중인 장병들의 전투화는 단순한 피복이 아니라 전투 지속능력과 직결된다. 발의 피로와 손상은 결국 전투력 저하로 이어진다. [사진: 육군 공개사진 캡처] |
① Protection이 왜 중요한가? ② 방탄헬멧 ③ 아이프로텍션 ④ 이어프로텍션 ⑤ 방탄복
⑥ 전투복 난연체계 ⑦ 전투복 위장체계 ⑧ 방한피복체계 ⑨ 화생방위협 보호체계 ⑩ 전투화
전투화는 군인이 가장 오래 착용하는 군수품 가운데 하나다. 총은 사격할 때만 들지만, 전투화는 하루 종일 신는다. 훈련장에서도, 경계근무에서도, 행군과 야외기동에서도, 비상대기 중에도 군인의 발에는 늘 전투화가 있다. 장병이 몸으로 가장 먼저 체감하는 군수품이 바로 전투화다.
그런데 한국군은 오랫동안 전투화를 단순한 “신발” 수준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전투화는 단순한 피복류가 아니다. 군인의 이동능력과 전투 지속능력, 피로도와 부상률, 체온 유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군수품이다. 발이 무너지면 무릎이 무너지고, 무릎이 무너지면 허리와 자세가 흔들린다. 장거리 행군에서 발의 통증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전투력 손실이다.
좋은 전투화의 조건은 분명하다. 외부 수분을 막는 방수성, 내부 습기를 배출하는 투습성, 장시간 착용에도 피로를 줄이는 착화감, 산악지형과 젖은 노면에서도 버틸 수 있는 접지력과 내구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품질의 균일성이다. 어떤 전투화는 좋고 어떤 전투화는 불량이라면 그것은 군용품으로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능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방수·투습 멤브레인, 내피 구조, 접착 공정, 봉제 방식, 밑창 설계, 라스트 설계, 품질검사 체계는 모두 비용이다. 좋은 소재를 쓰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정관리를 강화하면 생산비가 증가하며, 불량을 줄이기 위한 검사는 결국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좋은 전투화를 싸게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문제는 한국군 조달체계가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가격 중심 입찰 구조에서는 오히려 좋은 전투화를 만드는 업체가 불리해진다. 품질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공정관리를 강화할수록 원가는 올라간다. 반대로 최소 기준만 맞추는 업체는 가격을 쉽게 낮출 수 있다. 결국 제도는 겉으로는 품질을 말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낮은 가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이 구조에서 품질 저하는 예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다. 시장은 제도의 신호를 따라 움직인다. 가격을 보상하면 업체는 가격을 맞추고, 품질을 보상하면 품질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전투화 시장에서 반복된 문제는 특정 업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무엇에 점수를 주었는가”의 문제였다.
기능성 전투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방향은 달랐다. 당시에는 기술 평가 비중이 높았고, 방수·투습 기능과 착화감, 설계 역량이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최저가 중심 구조가 강화됐고, 시장의 방향 역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전투화 한 켤레에서 몇 천 원, 몇 만 원을 아끼는 것이 정말 이익인가.
전투화가 불편하면 장병들은 사제 깔창을 구매한다. 발이 아프면 훈련 집중도가 떨어지고, 물집이 생기면 행군 능력이 감소한다. 젖은 발이 오래 유지되면 피부 질환이 발생하고, 혹한기에는 냉손상 위험도 커진다. 결국 부대는 의무조치와 훈련 제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전투화에서 절감한 비용은 다른 형태의 비용으로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따라서 전투화 문제는 총수명주기 관점에서 봐야 한다. 군수품의 비용은 단순한 낙찰가가 아니다. 착용 만족도와 불량률, 교환률, 부상률, 훈련 손실, 장병들의 사제 구매 부담, 지휘 부담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진짜 비용은 구매 시점이 아니라 운용기간 전체에서 발생한다.
선진 군대가 군화와 피복을 단순 소모품으로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투복과 방한복, 방수복과 전투화는 모두 군인의 생존성과 임무 지속능력을 보장하는 체계다. 특히 전투화는 지면과 장병을 연결하는 유일한 군수품이다. 전투화가 실패하면 이동이 실패하고, 이동이 실패하면 작전 역시 흔들린다.
그렇다면 한국군 전투화 조달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첫째, 최저가 중심 구조에서 성능 기반 조달로 전환해야 한다. 최소 기준만 통과하면 가격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전투화에 적합하지 않다. 방수성과 투습성, 내구성과 접지력, 착화감과 중량, 건조성, 장기 사용 후 성능 유지율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시험실 수치만이 아니라 실제 장병 착용평가 역시 반영돼야 한다.
둘째, 소재와 품질체계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장병은 자신이 어떤 전투화를 지급받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방수·투습 전투화라면 어떤 멤브레인이 적용됐는지, 어떤 품질관리 체계를 거쳤는지, 어느 업체가 책임지는지 명확해야 한다. 군용품에서 라벨은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책임의 표시다.
셋째, 장기 착용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 전투화는 새 제품 상태만 봐서는 안 된다.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사용 이후에도 방수 성능이 유지되는지, 접착부가 벌어지는지, 뒤꿈치와 밑창이 무너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투화는 시험성적서가 아니라 실제 장병의 발로 검증해야 한다.
넷째, 불량과 성능 저하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납품만 하면 끝나는 구조에서는 품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일정 기간 내 방수 불량과 밑창 박리, 봉제 불량과 내피 손상이 반복된다면 업체가 책임져야 한다. 군용품은 납품 순간보다 사용 기간이 훨씬 중요하다.
다섯째, 군은 기술을 개발한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민간 기업이 군을 위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했는데도, 일정 기간 이후 가격 경쟁에 밀려 시장에서 사라진다면 누가 다시 군용품 개발에 투자하겠는가. 전력지원체계는 한 번 납품하고 끝나는 영역이 아니다. 전투화와 피복, 장구류는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개발기업이 성과를 회수할 수 있어야 다음 세대 개선도 가능하다.
여섯째, 장병의 피드백을 공식 데이터로 축적해야 한다. 지금도 장병들은 전투화에 대해 수많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커뮤니티 댓글과 부대 내 불평, 개인적인 사제 구매로 흩어진다. 군은 이를 체계적인 데이터로 관리해야 한다. 발볼 문제와 뒤꿈치 까짐, 방수 불량과 땀 배출 문제, 밑창 미끄러짐과 혹한기 착용 문제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해야 한다. 전투화 개선은 책상이 아니라 착용자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결국 전투화 문제는 철학의 문제다. 군인을 비용으로 볼 것인가, 전투력으로 볼 것인가. 전투화를 단순 소모품으로 볼 것인가, 임무 수행의 기반으로 볼 것인가. 조달을 단순 예산 집행으로 볼 것인가, 전투력 생성 과정으로 볼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군은 너무 자주 “싸게 사는 것”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해 왔다. 그러나 군수품에서 싼 것은 종종 더 비싸다. 당장은 예산을 절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장병의 불편과 훈련 손실, 품질 불신과 사제 구매, 반복 교체 비용으로 결국 다시 돌아온다. 무엇보다 군인이 국가가 지급한 군수품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가장 큰 손실이다.
전투화는 군인의 하루를 결정한다. 아침에 발을 넣는 순간부터 밤에 벗는 순간까지 장병의 몸과 함께 움직인다. 군이 정말 장병과 전투력을 생각한다면, 전투화부터 달라져야 한다. 좋은 전투화는 사치품이 아니다. 좋은 전투화는 전투력이다.
이제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전투화가 장병을 작전 끝까지 걷게 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군 전투화의 미래는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돼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스파르탄의 MILOVATION Issue] 전투원 생존 프로젝트 Link
① Protection이 왜 중요한가? ② 방탄헬멧(1) 방탄헬멧(2) ③ 아이프로텍션(1) 아이프로텍션(2)
④ 이어프로텍션 ⑤ 방탄복(1) 방탄복(2) ⑥ 전투복 난연체계
⑦ 전투복 위장체계(1) 전투복 위장체계(2) 전투복 위장체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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