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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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여는 인식의 지평 3 - 강성용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을 읽고

2,500년 전 고생의 연속인 인생살이에서 어떻게 하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없앨 수 있을까?’ 라는 붓다의 고민이 지금 우리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작성일 : 2026.04.22 08:08 수정일 : 2026.04.22 08:35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강성용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을 읽고

우리가 접하는 불교는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2500년이라는 길고 긴 역사속에서 여러 방향으로 그려진 붓다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신앙들이 반영되어 가공된 것이 많다. 역사적 서술이 아니고 종교적 서사에 가깝다.

이책의 저자 강성용은 인도고전학자다. 강성용은 한 여인(마야)에게서 태어난 한 인간으로서 붓다, 즉 역사적 붓다가 살아 생전에 무엇에 대해서 고민을 했고 그 고민에 대해서 어떤 해답을 얻었기에 불교라는 종교를 만들게 되었을까? 를 탐구하면서 생생한 붓다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한다. 최초의 원전을 찾아서 탐색하고 있다.

그 역사적 원음에서 현대인들이 정서적으로 만족하는 것, 즉 행복을 추구하는 실마리를 찾고자 불교의 역사성과 현대성을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나가고자 한다.

먼저 붓다의 출가수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붓다가 살았던 시기에 인도에 퍼져 있던 고유한 전통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1,500∽500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리안(Aryan)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이주하여 만든 구전 텍스트로서 베다(Veda)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은 사제인 브라흐만(brahmana)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지고 쌍쓰끄리땀어로 기록되어 전승된다. 현재 힌두교의 근원이 되었다.

베다 시기 초기에 아리안들은 죽은 조상들을 제사를 통해서 먹여 살린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을 때 자기 조상에 대한 제사의무를 다하고 난 후, 그의 후손들이 3대에 걸쳐 그 의무를 충실하게 계속 이행해 준다면 본인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편하게 지내는 존재로 고양될 수 있다는 관념이 아리안들의 내세관이었다.

베다 텍스트의 ‘다섯 불에 대한 앎’에서 삶과 죽음의 연속된 흐름을 설명한다.

제사에서 공물로 보내는 쏘마(환각 작용을 하는 식물의 즙)는 하늘나라에서 구름이 되고, 다시 비로 변하여 세상에 돌아오면 물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한다. 그 식물을 먹고 자란 가축을 인간이 먹는다. 인간의 몸에서 소화가 되어 결국 정액으로 변하여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내게 된다.

한 가족이 세대를 바꿔가며 이어가는 삶과 죽음의 연속된 흐름도 똑같은 원리에 의한다. 증조할아버지가 손자로 다시 태어나는 순환구조를 이룬다는 것이 그 당시 내세관이었다. 이러한 순환이 계속된다. 이것이 곧 윤회(輪廻)의 세계관이다.

붓다가 이런 무한적 윤회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출가수행자가 되는 정신적 문화적 맥락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셈이다.

붓다가 활동하던 당시의 인도 서북부에서는 베다 전통이 정착단계에 있었다. 그렇지만 붓다의 고향인 인도 동북부는 브라흐만의 사제들이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성행했던 흐름이 출가수행 전통이었다. 쉬라마나(śramaa, 沙門) 전통이었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전통속에는 인간의 생명현상과 의식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지바(jiva, 생명)란 관념이 있었다. 이 지바를 속박하는 미세입자가 까르마(karma)다. 나쁜 일을 했을 때 지바에 와서 달라붙는 나쁜 까르마가 있고, 좋은 일을 했을 때 달라붙는 좋은 까르마가 있다. 이를 업이라고 한다. 나쁜 까르마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출가수행자가 되는 것 뿐이었다.

2500년 전 붓다에게는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고생이었고, 그 고생이 윤회안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고민에 빠졌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까르마를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전통은 인간 붓다를 출가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붓다는 쉬라마나 전통에 따라 엄청난 고통을 이겨내는 수행, 즉 고행을 하게 된다. 극에 달하는 고행을 지향하는 두 분의 스승을 만나서 고행 정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행 중에 붓다는 왕자 고따마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근처 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보호자가 가까이 있어 고따마는 두려움이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고 시원한 그늘에 앉아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꼈던 체험을 단서로 깨달음이 시작되었다. 특정한 욕구가 있어서 그 욕구가 충족될 경우에만 행복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대상이 없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붓다는 고행이 아닌 방식으로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고행도 아니고 쾌락도 아닌 중간 길을 택해서 해탈을 하게 된 것이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혁신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것이었다. 쏠림이 없는 중간의 길이 붓다로 하여금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니르바나(열반:涅槃)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붓다는 다시 태어나서 윤회에 남게 되는 원인을 윤회 속에 계속 남아 있겠다는 갈구(渴愛)에 있다고 보고, 그 갈구를 없애는 것이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붓다는 이러한 깨달음 이후에 불교공동체를 이끌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해탈 또는 열반에 이르도록 하는 길을 프로그램으로 제시하게 된다.

고귀한 (이의) 네 진리’(사성제(四聖諦): 苦-고생, 集-고생의 근원, 滅-고생의 소멸, 道-고생의 소멸로 이끄는 길)가 그것이다.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설명하는 적확한 틀로서 사성제를 선택했다.

이와 함께 무엇이 쏠림없는 중간의 길인지를 설명하는 ‘여덟 단계의 고귀한 길’(八正道) 을 제시한다. 바른 판단(正道)→바른 결정(正思)→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계(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알아차림(正念)→바른 몰입(正定) 단계를 거쳐서 해탈을 한다는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붓다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사유를 ‘좋아하는 일(rāga)’,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경우(moha)’, ‘싫어하는 일(dvea)’ 등 세 가지에 있다고 보았다.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하거나, 너무 집착하게 되면 고생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모든 만족은 모두 불만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는 것이 붓다의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고행도 아니고 쾌락도 아닌, 딱 중간에 있는 굉장히 차별화된 중도(中道)를 제시했으며, 사성제와 팔정도의 틀 속에서 이에 대한 가르침을 펼쳤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저자 강성용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붓다가 생생하게 마주했던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을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붓다의 목소리를 추적하기 위해 인도 고전 원본문헌을 탐색하고 있다. 중간의 해석문헌이 아닌 원본을 탐색하고 있다.

불교의 출발점을 만든 붓다가 그의 시대에 무엇을 고민했고, 당시 사상가들과 달리 어떻게 발상의 전환을 하여 그 해답을 찾았는지 밝히고 있다.

붓다의 고민과 해답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정리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이제껏 믿어온 불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생각하게끔 만든다. 사성제와 팔정도, 까르마(업)와 윤회 등 불교의 핵심 개념들에 덧씌워진 각색을 걷어내고 붓다의 진짜 목소리에 다가서게 해 준다.

저자의 강성용의 해석은 매우 새롭다.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붓다의 가르침이 온전히 붓다 자신이 고안한 이론은 아니었다는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윤회, 그리고 업(業)이라고 번역하는 까르마가 고대 인도의 제사와 수행 전통에서 비롯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한편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적 흐름인 쉬라마나 고행의 전통을 혁신적으로 전환했던 인물이 붓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은 2,500년 전 고생의 연속인 인생살이에서 어떻게 하면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없앨 수 있을까?’ 라는 붓다의 고민이 지금 우리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준다.

여러분이 인생은 고생이라는 이 어려운 명제를 풀고자 한다면, 이 책을 통해서 그 해답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기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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