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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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부끄러운 자화상 ‘학술용병’의 원인과 그 대책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들이 선진국 대열의 앞줄에 서서 한국을 선도하고 있는가? 대학의 연구 실제를 보면 미국 등 선진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학은 외국 이론만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가는 학문의 전당이어야 한다.

작성일 : 2026.04.05 09:39 수정일 : 2026.04.05 10:18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한국 대학의 부끄러운 자화상 ‘학술용병’의 원인과 그 대책

국제 대학평가 과정에서 학술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 학자들의 이름표만 빌려오는 이른바 '학술 용병' 이라는 일부 대학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월 말 교육부는 국내 명문대들이 자기 대학의 학술실적을 부풀려 세계 대학 랭킹지표를 올리기 위해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학술 용병'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교육부는 대학평가를 목적으로 겸임·초빙교원 등으로 임용된 외국대학 교원이 교육·공동연구·학술교류 실적이 없으면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

최근 일부 대학이 외국 연구자들을 전략적으로 동원해 글로벌 랭킹 지표를 올린 정황이 보도를 통해서 드러났다. 장기간 체류하지도 않고, 강의를 맡지도 않고, 전임 교원과 연구 협력 실적이 당장 뚜렷하지 않은데도 학술 데이터베이스엔 국내 대학을 표기해 '소속 병기' 시스템의 빈틈을 노린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인 영국 QS(Quacquarelli Symonds)나 THE(Times Higher Education) 등에는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논문이 게재될 때 소속처가 2∼3개 기재되면 해당 기관 모두의 실적으로 인정하는 헛점이 있었다.

편법으로 임용된 외국인 학자가 세계 어디에서 논문을 쓰든 제2, 제3 소속에 국내 대학 이름을 끼워 넣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해당 대학의 연구 실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라는 것이다.(연합뉴스 보도내용).

 

이와 관련되는 정책부터 알아보자. 지난 2009년부터 시행된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 육성 사업(world class university, 이하 WCU 사업)’이다. 이는 연구역량이 높은 해외학자를 확보하여 대학의 교육과 연구 풍토를 혁신하여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 정책이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학술용병’이란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을 대학에 단기적으로 고용하여 그 대학의 연구성과를 높이는 불합리한 행태를 말한다.

학술용병은 WCU 사업 정책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 일리 있는 지적인 것 같다.

WCU 사업은 2008년 기획단계를 거쳐 이듬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정부가 의욕을 갖고 진행한 대학의 연구역량 강화 목적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대학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국가의 경쟁력 확대로 이어지게 하는 고등교육 강화 사업이면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이었다. 미래 국가발전 핵심 분야의 연구 추진, 그리고 학문 후속세대 양성 및 연구역량이 높은 해외학자의 확보를 통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 풍토를 혁신하고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업의 중심에는 세계적인 연구인력의 국내 유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수한 교수의 유치도 중요하지만 국내 대학 교수들이 의욕적으로 세계 수준의 연구를 하도록 독려하는 대책은 빠져 있었다. 2010년대에는 우리 대학의 학문역량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는 데 말이다.

이와 같은 WCU 정책은 선진국을 모방하고 추격하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정책의 추진 기간은 총 5년으로, 해당 기간 중 약 8,2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사업은 다시 그 운영 형태에 따라 세 개로 구분하여 운영되었다. ① 전공 학과 개설 지원과제(제1유형), ② 개별학자 초빙 지원과제(제2유형), ③ 세계적 석학 초빙 지원과제(제3유형) 등 3개의 유형이었다.

여기서 제3유형의 과제는 1과 2 유형 과제와는 다른 형태를 취한다. 제3유형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석학을 초빙하여 비연속적으로 일정기간(2개월 기준, 단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 2개월 미만도 허용) 동안 국내에 체류하면서 교육 및 공동연구 등을 수행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석학을 비전일제 교수로 초빙하여 활용하는 것을 지원한다는 의미였다.

이 정책의 제3유형이 저명한 외국 학자들의 이름표만 빌려오는 '학술 용병'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깊은 사유와 고민 없이 기능적으로 정책을 설계한 데서 오는 부작용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학술용병이라는 부끄러운 자화상 앞에 서 있는 대학 구성원들과 정책당국은 그 원인과 배경, 그리고 향후 대책 대해서 진정성 있는 고민과 성찰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근원적 원인은 정부의 정책설계 능력 부족, 그리고 대학 구성원들의 창의적인 선도형 연구를 향한 자신감의 부족, 창의적 연구자세의 미흡에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대학 구성원들이 내놓은 진단은 여전히 예산 부족 타령뿐이다. 대학 구성원들의 자질과 연구역량이 부족했다거나 세계 지식시장에 나서서 당당하게 견주고자 하는 의욕과 자신감이 낮았다는 자기고백성 성찰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서울의 한 사립대 연구처 인사는 ‘논문 잘 내는 석학은 기존 교원 급여의 최소 3배는 줘야 하는데 대학엔 그럴 돈이 없다. 결국 겸임(Joint Appointment) 형태로 전임교원의 50% 혹은 25%만큼의 인건비로 데려왔다가 몇 년 뒤 보내는 식’이라고 말했다(2026. 4. 3일, 연합뉴스보도).

재정은 말라가는데 돈줄을 쥔 정부가 '글로벌 랭킹' 성과를 강조하자, 비싼 몸값의 석학을 초빙하는 대신 저비용 고효율의 '다작' 연구자를 택하도록 부추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핑계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가정이지만 대학이 원하는 만큼 재정적 지원을 충분히 해주었다면 대학의 학술용병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대학은 외국에서 수입한 이론만을 주입식으로 교육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이론을 만드는 방법론과 이에 따라 스스로 개발한 실제 이론을 가르쳐야 할 때가 됐다. 이 길이 우리 대학이 나아갈 길이다. 이런 진단을 듣고 싶다.

Park’s theory, Kim’s theory 등 우리 토종이론을 개발하여 가르쳐야 할 때가 되었다.

정부는 당초 WCU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학 구성원들이 모방하는 추격자의 자세가 아닌 선도적인 자세로 스스로 창의적 연구에 매진하여 학문적 성과를 내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각 대학의 전임교수들이 창의적 연구성과를 세계 학문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즉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도록 함으로써 SCI(science citation index)나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인용율을 높이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강조했어야 했다.

대학의 전임 교수진과 재학생들의 연구성과만이 평가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금 느릴지라도 내실 있게 가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길이다.

편법을 낳을 여지가 있는 정책은 그 대상자들이 정책학습을 통해서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 (후기)역사학적 신제도주의 이론의 주장이다. 정책의 경로가 왜곡되거나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한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들이 선진국 대열의 앞줄에 서서 한국을 선도하고 있는가? 대학의 연구 실제를 보면 미국 등 선진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나의 고백성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승연 교수는 그의 논문 ‘정책수단으로서 행정지도의 변화’ 에서 한국 공무원이 많이 활용하는 행정지도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행정지도는 전통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으나, 미국 행정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경향에 따라 우리 행정학계에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학은 외국 이론만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가는 학문의 전당이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대학 구성원들은 구시대적인 남 탓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학문 발전은 더욱 더뎌질 것이다. 이제 진지한 자성적 자기성찰과 함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자신감을 갖고 바르게 나아갈 때가 되었다. 때가 찼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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