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사회는 스스로 착취하는 사회다. 성과 주체로서 본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
작성일 : 2026.03.20 10:13 수정일 : 2026.03.20 03:27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고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2010, Müdigkeitsgesellschaft)는 근대와 현대 사회를 통찰하는 두 가지 프레임을 제시한다. 병리학적 측면에서 근대와 현대사회를 분석한다. 독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철학에세이다. 두께는 매우 얇지만 한 자 한 자 신경을 써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책이다.
한변철은 근대의 '부정성' 사회에서 현대의 '긍정성' 사회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근대가 ‘해서는 안 된다’ 또는 ‘해야 한다’는 규율사회로서 금지와 통제의 부정성을 기반으로 했다면, 현대는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20세기는 궁핍, 결핍의 시대였다.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고 안과 밖, 친구와 적으로 나누어 뚜렷한 경계선을 그었던 시대였다. 이 때의 본질은 공격과 방어였다. 타자는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었다. 병리학적으로 볼 때 면역학적인 담론이 지배했다.
냉전, 면역학, 규율사회 등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사회에서 벗어나 현재는 부정성이 제거되고 긍정성이 지배하는 성과사회로 변했다.
근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타자에 의한 착취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풍요로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 속으로 자신들을 내몰고 있다. 이것이 자기 착취다. 외부의 압력이 아닌 스스로를 착취하는 기이한 현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일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더 가혹할 수 있다.
한병철은 병리학적으로 근대와 현대를 비교하고 있다. 근대에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무서웠다. 이를 면역적으로 막았다면, 현대의 성과사회에서는 과도한 긍정성이 심리적 질병을 야기하는 신경성 질환, 즉 탈진, 우울증 등이 무서워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영혼이 소진하고 마는 탈진(Burnout)이 나타난다.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지는 우울증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부터 비롯된다.
한병철은 피로사회를 이겨 나가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그는 두 종류의 피로를 대조적으로 비교한다.
하나는 분열시키는 피로다. 자기를 타인과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치유하는 피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위(無爲)'의 상태에서 느끼는 평온한 피로다.
후자를 통해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고 피로사회의 병리를 치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리하면, 성과사회는 스스로 착취하는 사회다. 성과 주체로서 본인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번아웃ㆍ우울증이 빈발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인식의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성과사회의 모습은 현재의 한국사회의 현실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이러한 현실은 긍정의 힘을 통해 성공을 설파하는 자기개발 서적들이 우리의 도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긍정성 명제가 모두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된 패러다임이 되고 있지만, 한병철의 주장대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하는 성과사회의 변증법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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