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글로벌 이슈

AI 시대의 인지전, '마음의 성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가 흔드는 현대전, 기술적 방어를 넘어 '인지 회복력' 키워야

작성일 : 2026.03.14 09:17 수정일 : 2026.03.14 09:24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 관련 가짜 전쟁 영상이 AI로 제작돼 SNS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딥페이크 콘텐츠는 여론뿐 아니라 전장의 판단과 지휘체계를 교란할 수 있는 새로운 전쟁 수단으로 주목된다.    ⓒ BBC
 

   몽골 제국의 군대가 성문 앞에 섰을 때, 그들이 먼저 꺼내 든 무기는 칼이나 화살이 아니었다. 바로 '공포'였다. "저항한 도시는 파멸하고, 항복한 도시는 살아남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소문은 공포를 낳았고, 공포에 질린 도시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스로 성문을 열었다. 전쟁은 이미 칼이 맞닿기 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공략은 현대전에서도 형태를 바꿔 반복된다.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은 전장을 미국 안방으로 확장했다. 전쟁의 참상이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자,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이 퍼졌다. 반전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결국 전쟁의 향방은 정글이 아닌 여론의 향배에 의해 결정되었다.

   최근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조작된 영상과 음성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빛의 속도로 유포된다. 대통령이 항복을 선언하는 듯한 딥페이크 영상이나 지도자의 발언을 위조한 가짜 음성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의 감정을 자극한다. 인공지능(AI)이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안개'를 전장 밖 민간 영역까지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전쟁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쟁이 물리적 화력과 병력에 집중했다면, 정보화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간의 인식과 판단 그 자체가 전장이 되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AI는 인간의 '확증 편향(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을 교묘히 파고들어, 거짓을 진실보다 더 매력적으로 포장해 전달한다.

   이러한 인지 공격은 국가의 전쟁 지속 능력과 직결된다. 국민이 명분을 잃고, 전투원은 사기가 저하되고 상황을 불신하며, 지휘관이 정보의 정확성을 의심하게 되면 승리는 요원해진다. 보이지 않는 심리적 균열이 물리적 방어선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한국군 역시 AI와 네트워크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를 도입하며 전장의 디지털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네트워크로 긴밀히 연결된 현대 전장에서 정보는 곧 공격의 대상이다. 드론과 위성, 다양한 개인 단말을 통해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환경은 역설적으로 적의 심리 조작이 침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군사 네트워크와 민간 인프라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병사의 스마트폰이나 후방의 정보체계는 조작된 정보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지휘관의 음성을 모방한 가짜 명령이 하달되거나, 조작된 드론 영상이 허위 보고로 전달되는 상황은 결코 공상 과학이 아니다. 총성 한 번 없더라도 아군 내부에 혼란을 일으켜 작전 수행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은 단순한 기술적 방어에 그쳐서는 안 된다. AI가 생성한 가짜 정보를 식별하는 체계적 절차를 확립함과 동시에, 허위 정보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지 회복력(Cognitive Resilience)'을 갖춰야 한다. 이는 군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가 정보 환경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인식의 방어력'은 이제 국가 안보의 핵심 구성 요소다.

   전쟁의 본질은 결국 인간 의지의 대결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전쟁의 결과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미래의 위협을 외면한 채 대비를 미루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변화를 쫓는 속도만큼이나, 전쟁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등록된 데이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