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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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과 아마추어리즘

시민적 수월성에서 프로페셔널리즘으로의 전이, 그리고 한국군의 명예 문제

작성일 : 2026.02.20 11:56 수정일 : 2026.02.21 07:37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이들은 공동체를 위해 생명을 내놓았고, 그 선택 자체가 최고의 명예가 되었습니다."  전사한 시민들을 기리며 공동체의 덕과 명예를 말하는 페리클레스의 장례식 연설 장면.
 

   고대 그리스 시민에게 가장 명예로운 일은 공동체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농사를 짓다가도 위기 앞에서는 방패를 들었다. 정치와 전쟁, 체육과 예술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었다. 모두 시민으로서의 수월성, 즉 공동체 안에서 자기 역할을 최선으로 수행하는 능력에서 출발했다. 그 수월성에 대한 보상은 금전이 아니라 공적 인정이었다.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은 ‘사랑하다(amare)’다. 본래 아마추어리즘은 미숙함이 아니라 보상 이전의 헌신을 뜻했다. 시민은 돈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움직였다. 수월성은 직업적 숙련이 아니라 시민적 덕이었다. 그래서 고대 사회에서 정치와 전쟁은 직업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였고, 동시에 명예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 구조는 뒤집혔다. 수월성은 점차 직업 영역으로 이동했고, 성과와 전문성, 경쟁력이 중심이 되었다. 수월성은 더 이상 명예로 이어지지 않고 보상과 지위로 환원되었다. 공적 승인으로서의 명예는 시장 논리 속에서 흐릿해졌고, 아마추어리즘은 폄하되며 프로페셔널리즘이 유일한 정당성의 기준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용어 변화가 아니라 인간형의 변화였다. 고대에는 수월성이 명예를 낳았지만, 현대에는 성과가 보상을 낳을 뿐이다. 명예는 그 과정에서 증발했다.

   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의 군인은 철저히 프로페셔널로 조직된다. 기술 숙련과 절차 준수, 관리 능력이 평가의 중심이 되고 모든 것은 지표화되어 관리된다. 그러나 동시에 군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전히 시민적 덕이다. 공동체를 대신해 위험을 감수하는 책임, 정치적 절제,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 필요할 경우의 자기희생은 직무 기술이 아니라 덕목에 속한다.

   여기서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군인은 계약된 전문가로 관리되지만 시민적 수행자일 것을 요구받는다. 성과 중심 시스템 안에서 덕을 기대하는 이중 구조다. 그 결과 책임은 계약화되고, 판단은 상향 이동하며, 위험 회피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규정 준수가 용기를 대체하고, 평정과 보직, 진급이 명예를 대신한다. 군 조직은 점점 능숙한 관리자들을 만들어내지만, 위기에서 결단하는 인간형은 재생산하지 못한다.

   최근 한국군이 겪고 있는 혼란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단일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된 정체성 균열이 표면화된 것이다. 군인은 누구인가. 명령 수행자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대표하는 존재인가. 기술적으로는 프로페셔널이어야 하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시민적 덕 위에 서 있어야 하는 이 모순이 지금 한국군 내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재의 군 조직은 군인을 ‘고용된 전문가’로 관리한다. 위험 감수는 직무 범위가 되고 헌신은 계약의 일부가 된다. 이 구조 속에서 명예는 사라진다. 대신 남는 것은 승진 경쟁과 책임 회피, 그리고 판단의 외주화다. 군인은 점점 판단 주체가 아니라 지시 이행자가 된다. 이것이 지금 한국군이 직면한 가장 깊은 위기다.

   이 지점에서 다시 아마추어리즘을 말하는 이유는 낭만적 회귀가 아니다. 아마추어리즘은 군인을 미숙하게 만드는 개념이 아니라 군인을 다시 시민의 자리로 돌려놓는 언어다. 수월성이 다시 명예가 되기 위해서는 군인의 자기 이해에서 ‘직업’이라는 경제적 중심축이 의도적으로 후퇴할 필요가 있다. 군인은 노동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대신해 위험을 떠안은 존재라는 인식이 회복되어야 한다. 동시에 덕목은 양성교육에 그쳐서는 안 되며, 군 복무 전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환기되고 재내면화되어야 한다. 기술 훈련은 지속되지만 덕 교육은 초기에만 잠깐 이루어지는 현재 구조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장교는 숙련된 관리자가 될 뿐 시민적 판단 주체에서는 멀어진다.

이 글은 해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군인을 원하는가.
능숙한 관리자인가, 책임지는 시민인가.
그리고 군인의 명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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