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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 혜화동 탐방 ②- 구한말과 현대 초기 사(史)와 문(文)의 숨결

-동숭동과 혜화동은 대학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출발점이다. 조선시내 도성 5대 명승지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연극인들의 삶의 터전이며, 서울 도성의 일부인 낙산 산성이 있다-

작성일 : 2026.02.07 02:35 수정일 : 2026.02.15 10:15 작성자 : kangsabin1, 주신혜 (kangsabin1@newssisun.com)

낙산 도성에서 바라본 시내모습

 

 

조선의 4대 명승지, 낙산

 

낙산 도성에서 산책하는 시민들

 

동숭동, 혜화동이 위치한 조선의 한성부 동부 지역은 인왕산에서 낙산(駱山)으로 이어지는 한양 도성 내의 동북부 방면의 끝자락이다. 흔히 경복궁을 중심으로 당시 풍수지리에 따라 좌청룡(: 인왕산), 우백호(: 낙산), 북현무(: 북악산), 남주작(: 남산)의 형국에서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산이다. 대체로 다른 세 곳이 300m 높이의 산임에 반해 낙산은 100m 조금 넘는 상대적으로 낮은 산이다.

 

낙산에는 한 때 호랑이가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옛적 인왕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명은 낙타 봉우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낙타산(駱駝山)’이라 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우유를 돌궐어 타라카를 차용하여 타락(駝駱)이라고 하는데, 조선 왕실의 우유 보급을 위한 젖소를 키우는 곳이라고 해서 타락산이라고도 했다. 최근에 '카데헌'에서 진우와 리아가 조용한 만남을 이룬 것으로 한류의 한 장소이기도 하다.

 

낙산 서쪽 현재 혜화동, 동숭동 공간을 '쌍계'라고 하였다. 두 개의 천이 흐르는 계곡이 있었고 조선 도성 내 4대 명승지 중의 하나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성균관(명륜동) 쪽에서 발원한 반궁천과 낙산 서쪽의 계곡에서 발원한 흥덕동천 상류(구분을 위해 쌍계동천으로 부르기도 함)가 지금의 혜화동 로터리 부분에서 합해지면서 흥덕동천이라는 이름으로 흘렀고, 그것이 청계천으로 합해졌다고 한다. 서울대학교가 있는 동안에는 대학천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서울대 학생들은 이것은 세느강이라고 불렀다. 혜화역 부근에 있던 다리는 '미라보 다리'라고 불러 당시 문화의 도시 파리를 연상케 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고 있지만, 최근 그 흔적을 되살리기 위하여 서울대학교 병원 울타리 쪽으로 인공적으로 작은 물길을 내어 흐르게 하고 있다.

 

흥덕이 밭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푯말


낙산 봉우리 성내 쪽 중턱에는 흥덕이밭이라는 푯말이 있다(사진 참조). 청에 볼모로 잡혀간 봉림대군(후 효종)을 시중들던 흥덕이가 청에서 텃밭으로 김치를 담궈 대접하던 맛을 못 잊어 효종이 된 임금이 흥덕이에게 김치를 담글 수 있도록 밭을 하사하여 납품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에 기초한다.

 

현재의 혜화문 야경 모습

 

북악산에서 낙산 산성으로 이어지는 중간에 혜화문(惠化門)이 있다. 조선 건국 직후 4대문과 4소문이 완성되었는데, 북대문(숙정문)과 동대문(흥인지문) 사이에 위치하여 동소문이라고 통상 불렀으나, 동대문을 흥인지문이라는 고유한 이름으로 붙였듯이 현판의 이름은 홍화문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창건된 창경궁 동문(정문)의 이름과 겹치게 되어 중종 때 혜화문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혜화동이라는 동 명칭이나 동소문동이라는 동 명칭은 여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는 통상 북대문인 숙정문이 닫혀 있어서 포천이나 의정부 방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대부분 주민들이 이 문을 이용할 만큼 중요한 길이었다.

 

구한말 3대 성당의 하나인 혜화성당

 

혜화문이 있는 길 건너편에는 구한말 카톨릭의 3대 성당인 혜화동 성당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는 가톨릭대학교와 동성고등학교와 동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구한말 도성 내 3대 성당은 명동성당, 중림동 약현 성당, 혜화동 성당을 통상 언급하는데, 혜화동 성당은 베네딕트 선교회가 1927년 설립한 건물을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철학자의 거리라고도 한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이 자리하고 있었던 연유로 우리나라 철학계의 태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박종홍 교수, 김태길 교수 등이 거주하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당시 천변에 있었던 학림다방은 학자들의 담소 공간이었다. 학림다방은 주요섭의 소설 '아네모네의 마담'이라는 단편의 모티브라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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