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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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구호가 복수의 단초가 되는 한국정치의 현주소

정치적 정의는 실행될수록 위험해지며, 그 위험을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의를 ‘사람’이 아니라 ‘절차’에 맡기는 것이다

작성일 : 2026.01.16 05:30 수정일 : 2026.01.16 05:56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오레스테스의 재판은 피의 복수가 법적 절차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의는 시민의 판단과 제도적 절차를 통해 확정된다.   [사진: Spoken Past 홈페이지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관련 재판에서는 특검의 사형 구형이라는 최고 수위의 형사 절차가 제시되었다. 국회에서는 민주당 주도로 2차 내란특검법이 발의되었다. 야당 내부에서는 한동훈 전 대표를 둘러싼 당원 게시판 논란이 당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으로 이어졌다. 형사 처벌과 정치적 징계가 동일한 시간대에 병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사건들은 개별적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동시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하나의 정치적 흐름을 형성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형사적 책임이나 윤리적 정당성 판단과 별개로 정치보복이라는 시각에서 해석될 개연성을 내포한다. 문제는 불법 여부 그 자체가 아니다. 책임을 설명하는 언어가 형사 처벌과 징계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절차의 적법성은 강조되지만, 왜 지금이며 왜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시민들은 결과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의 맥락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인식은 일회적 감정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기마다 전임 권력은 반복적으로 사법 절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진영이 교체될 때에는 응징의 상징으로, 같은 진영 내부에서는 정당성 확보를 위한 거리두기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각 사안은 법적으로 설명될 수 있었지만,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사법의 중립성보다 정권 교체의 맥락이 더 강하게 남아 왔다.

   진영 간 정권 교체 국면에서는 전직 대통령과 핵심 측근이 사법 절차의 중심에 놓였다. 진영 내부 교체에서는 제한적 수사나 징계를 통해 선을 긋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제도적으로는 모두 설명 가능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 속에서는 사법 판단 자체보다 정권 교체의 의미가 먼저 읽혔다. 그 결과 사법은 분쟁을 끝내는 장치라기보다, 정치적 전환을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동해 왔다.

   비교의 시각에서 보면 다른 민주국가들은 이 문제를 다층적으로 관리해 왔다. 미국은 기소 원칙과 연방·주 분권 구조를 통해 형사 책임의 정치화를 완충한다. 프랑스는 개별 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제한해 왔다. 대만은 정치화 논란이 반복된 수사기구를 해체하며 책임 추궁의 경로를 조정했다. 이들 국가는 형사를 책임의 한 방식으로 두되, 유일한 언어로 만들지 않았다.

   정치보복 담론을 가르는 이론적 기준은 비교적 명확하다. 정책 판단이 사후적으로 범죄로 전환되는가. 수사가 특정 진영이나 인물에 선택적으로 집중되는가. 절차가 과도한 상징성을 동반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정권 교체의 시간표와 결합되는가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 정치의 책임 추궁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과거사 단죄형과 자기 진영 분리형은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상징적 응징형과 정책 형사화형이 반복적으로 강화된다. 전자는 처벌을 통해 정치적 기억을 고정한다. 후자는 정책 결정과 통치 판단을 형사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정의는 실현될수록 다음 책임 추궁의 근거를 축적한다. 현재의 집행 방식은 미래의 사법 판단 대상이 된다.

   이 지점에서 고대 비극 오레스테이아는 중요한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오레스테스는 신탁이라는 정당한 이유에 따라 살해를 실행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폭력의 반복을 멈추지 못했다. 아테나는 분노를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이라는 절차로 판단의 주체와 방식을 전환했다. 핵심은 정의의 완성도가 아니라 순환의 종결이었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는 이러한 종결의 설계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반민주적 행위의 단죄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의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절차의 절제가 결여되면 정의는 복수로 해석된다. 복수는 다시 다음 단죄의 정당화 근거가 된다. 이 악순환을 끊는 조건은 분명하다. 정의를 개인의 결심이나 진영의 의지가 아니라, 절차의 구조와 한계에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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