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미흡함을 채워주는 장치로서 상대방과의 협상 또는 합의라는 숙의적 민주주의 절차가 추가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작성일 : 2025.12.31 10:15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2026년 새해 아침 제도와 민주주의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헌법 제1조를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의 정체(政體)와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원리를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후 이 원리에 따라 국가를 세웠고,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민주화 투쟁을 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성숙한 선진 민주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목 놓아 외쳤던 제1세대 양심적 순수 민주세력이 세월과 함께 떠나셨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너끈히 해결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대미문의 정치적 성장 속에서 자라난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자기 입장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데서 생긴 현상일지도 모른다.
국민이 갖는 주권은 쪼갤 수도 양도할 수도 없다. 국민 모두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장자크 루소 등의 주장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다수결 원칙에 따라 승자에게 정권 모두를 일정 기간 동안 맡기고 있다. 2/3를 득표했다고 해서 2/3만큼의 권력만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머지 1/3의 권력을 추가로 더 받고 있다. 따라서 제도의 과잉수권 안에서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숙한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생긴다.
민주주의를 굳건히 받쳐주는 디딤돌은 선거제도다. 대개 다수결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원리에 문제가 있다고 Arrow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투표제도가 민주주의의 절차적 공정성을 만족시킨다고 하더라도, 모든 투표제도는 투표자의 선호와는 관계없는 자의적인 사회선택을 낳는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실제로 콩도르세(Condorcet) 규칙, 보르다(Borda) 방식, 단순다수결 등 여러 가지 투표방식에 의해 표를 계산할 때, 그 결과는 각각 다르게 나온다. 이러한 현상을 다수결 원칙의 우리 선거사례를 통해서 알아보자.
2024.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여당과 야당, 득표율이 고작 5.4%p 차이였지만, 의석은 161대 90로 차이가 매우 컸다. 이는 득표율 1위만 당선되고 나머지는 '사표(死票)'가 되는 소선거구제의 특징 때문에 발생한 제도의 결과다. 그 결과, 한 정당은 과잉대표, 다른 정당은 과소대표 라는 왜곡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적 미흡함을 채워주는 장치로서 상대방과의 협상 또는 합의라는 숙의적 민주주의 절차가 추가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성숙한 정치과정을 외면한 채 다수의석을 차지한 일방에 의해서 다수결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다수에 의한 독재 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런 사례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 근저에는 경쟁자를 타협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여기는 정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런 타성은 한 밤중에 계엄을 선포했던 지난 정부에서도 팽배했었다. 그들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할 줄 몰랐다.
시스템이라는 제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세상만사가 제도에 의해서 굴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각 개인의 이성이 모아져서 형성된 집단지성이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할 때가 더 많다. 좋은 제도를 설계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민족의 위대함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은 더 성숙하여 세계 일등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얄팍한 지능이 아닌 깊디깊은 양심적 지성이 우리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하루키의 글을 소개한다. “혹시 여기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쳐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늘 그 알의 편에 서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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