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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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열차게」의 사회학

비표준어의 빈번한 사용은 사회적 갈등을 인식하는 프레임의 변화를 보여준다.

작성일 : 2025.12.20 11:12 수정일 : 2025.12.20 11:32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정치적 갈등이 설명보다 강도로 전달되는 최근 한국사회의 정치토론 환경   [이미지: ChatGPT 생성]
 

   최근 정치 시사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젊은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이 “가열차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논쟁이 치열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표현은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표준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말의 오류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갈등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에 가깝다.

   이 표현의 사용 맥락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가열차게 투쟁하다’라는 문장은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공식 매체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상투적 표현이다. 다만 이 표현이 북한 매체에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이 곧바로 영향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 간 언어 환경과 교류 조건을 고려할 때, 이를 직접적인 차용이나 전파의 결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현상은 한국 사회 내부의 언어 사용 조건 변화와 맞닿아 있다. 설명적인 ‘~하다’형 표현보다 감정과 에너지가 응축된 형용사형 표현이 선호되고, 정치 담론은 정책의 내용보다 태도와 결기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해 왔다. 여기에 방송 언어의 규범적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정확성보다는 즉각적인 전달력과 자극성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가열차게’라는 말은 이러한 변화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 현상을 외부 언어의 영향 문제로 환원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담론 환경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사실이다. 갈등이 정치 동원의 핵심 자원이 될수록 언어는 설명과 조정의 도구가 아니라 결집과 대립을 촉발하는 신호로 기능한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체제와 맥락에서도 전투적 어휘가 선택되고, 담론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적 수렴은 전투적·동원형 어휘의 사용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북한에서 ‘총공세’나 ‘전선’은 사회 전체를 동원하기 위한 이념적 언어로 사용된다. 한국의 정치 방송에서 같은 표현은 실제 전쟁을 뜻하지 않지만, 사안을 단순한 찬반 구도로 압축하고 여론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기능을 한다. ‘결사항전’이나 ‘끝까지 간다’는 표현 역시 타협 가능성을 사전에 좁히며, 정치적 선택지를 승부의 문제로 바꾸는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 선택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전투적 표현이 일상화될수록 정치적 사안은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편을 정해 응원해야 할 승부로 인식되기 쉽다. 타협은 원칙 없는 후퇴로, 조정은 책임 회피로 오해받는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핵심인 과정과 절차는 언어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고, 갈등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반복 소비되는 자원이 된다.

   해외 사례는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케이블 뉴스는 ‘battle’, ‘war’, ‘fight’와 같은 전투 은유를 상시적으로 사용하며 정치적 긴장을 증폭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입장은 정책 차이라기보다 정체성의 대립으로 굳어졌고, 타협은 배신에 가깝게 인식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반면 일본 방송은 갈등을 ‘조정’, ‘절충’, ‘운용’의 문제로 표현하는 데 비교적 익숙하다. 대립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때로는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는 비판도 함께 따른다. 언어 선택이 정치 문화의 방향을 실제로 바꾼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아직 이러한 언어 변화가 사회 전반의 합의 구조를 훼손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가열차게’라는 표현이 정치 담론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갈등을 설명하기보다 대결의 강도로 전달하는 언어가 점차 익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갈등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반복될 경우 갈등의 인식 방식 자체를 고정시키는 매개로 작동한다.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표현의 유행에 그칠지, 아니면 정치 담론의 관행으로 굳어질지는 앞으로 어떤 언어가 선택되고 축적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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