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위해 헌법상 영토조항을 검토해야 한다는 발상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작성일 : 2025.12.08 07:58 수정일 : 2025.12.12 12:28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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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주최 '정부 출범 6개월,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정동영 통일부장관. [사진: 연합뉴스] |
12월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관계 원로 간담회에서 문정인 교수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들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조항이 남북 공존의 제도적 진전을 막고 있다며, 현실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헌법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체계의 경직성을 지적하며 안보·통일 정책의 구조적 재설계를 언급했다.
이 논의는 곧바로 국내 정계와 언론의 첨예한 대립을 촉발했다. 보수진영은 헌법 제3조를 건드리는 순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주권이 흔들린다고 반발했고,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남북 병존의 현실을 반영하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언론 보도 또한 양분되었다. 일부는 “분단 70년의 헌법 구조를 재검토할 시점”이라 했고, 다른 일부는 “정체성을 흩트리는 위험한 논의”라 경고했다. 사회 각계의 반응 역시 극명히 갈리며, 통일을 둘러싼 헌법 해석이 단순한 법 논쟁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생존 전략의 문제임이 드러났다.
사실 이번 논의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영토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일부는 제3조를 통일 이후의 상징적 선언으로, 또 다른 일부는 국제법적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할 규정으로 해석했다. 반면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제3조와 제4조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실현의 관계라며, 헌법 체계 내에서 충분히 조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번 전직 관리들의 발언은 이러한 논쟁구조 중 ‘현실주의적 개정론’에 해당하며, 그 근거를 헌법의 내부 논리가 아닌 정치적 현실인식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정치이념의 차이로 환원될 사안이 아니라, 헌법에 기초한 국가이익의 위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아야 한다.
헌법에 기초한 국가이익의 위계를 간단히 정리하면, 첫째 생존이익—국가의 존속, 영토, 국민의 안전이 최상위에 위치한다. 둘째 체제이익—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기본권의 보장이 이를 지탱한다. 셋째 사회통합이익—복지와 교육, 문화적 결속이 뒤를 잇는다. 넷째 민족통일이익—평화적 통일은 상위 가치의 틀 안에서만 유효하다. 다섯째 국제공영이익—국제협력과 인류공영은 그 결과물이다. 이 계층구조는 국가의 행동과 정책 판단의 헌법적 기준선을 제시한다.
이 위계에 비추어 볼 때, 전직 관리들이 제기한 헌법 제3조 재검토론은 명백한 모순을 내포한다. 통일이라는 하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위의 국가존립 원칙을 수정하자는 주장은, 수단이 목적을 바꾸려는 오류에 가깝다. 영토조항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를 규정하는 근간이며, 평화적 통일은 이 근간이 전제되어야만 성립한다. 따라서 제3조를 유연하게 해석하자는 논리는 헌법이 설정한 국가이익의 질서 자체를 거꾸로 세우는 셈이다.
물론 헌법이 고정불변의 문서는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정될 수 있고, 정권마다 정책의 우선순위나 통일 접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는 헌법이 보장하는 질서와 국가의 생존선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영토와 주권, 국민의 안전은 정권의 이념과 무관하게 언제나 최상위의 이익으로 남아야 한다. 제도의 경직성을 논의할 수는 있지만, 헌법의 뼈대를 흔드는 것은 결국 국가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흔드는 일이다.
헌법은 시대의 거울이면서도 국가의 뿌리다.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과정 속에서 개정은 가능하지만, 국가의 생존과 영토, 국민의 안전 같은 사활적 이익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통일은 그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순서를 뒤집는 순간 국가의 정체성은 무너진다. 헌법 제3조를 재검토하자는 발상은 현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깎아내리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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