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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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친교(不必親較)와 삼권분립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이며,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정치적 어리석음이다.

작성일 : 2025.11.27 11:09 수정일 : 2025.12.02 03:19 작성자 : 한제상 (js25172@newssisun.com)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제정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연방헌법은 제1·2·3조에서 각각 입법(의회)·행정(대통령)·사법(연방법원)의 권한을 분리 배치하고, 상호 견제 장치를 설계했다. 이는 몽테스키외 이론을 실제 헌정 구조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이후 다수 국가의 헌법이 모범으로 삼은 제도적 삼권분립의 전형이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취임 이후 사법·검찰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26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메시지를 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검사들이 증인 채택 불발에 반발해 퇴정한 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의 법관 비난 발언에 대해 “재판 방해 행위”라며 엄정한 감찰과 신속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보도다. 여권은 이를 “사법부 권위를 지키는 정당한 조치”라 옹호했지만, 야권은 대통령 본인이 연루된 사건에 개입하는 행위라며 “재판 간섭”이라 반발했다. 언론은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면서도 특정 재판을 둘러싼 대통령의 지시가 권한의 경계를 흐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단발적이 아니다. 앞서 대통령은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에서도 의혹 제보자인 백해룡 경정을 합수단에 합류시키라고 지시해, 제보자를 수사 조직 한복판에 배치하는 이례적 조치를 취했다. 또,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논의와 관련해, 사법권력이 정치 위에 군림하는 ‘사법국가’로 변질됐다고 비판하며,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대해서도 연내 추진을 사실상 시한처럼 제시하며 속도전을 주문했고, 정책감사와 직권남용 수사 관행을 전반적으로 손보라고 지시하며 공무원 통제 시스템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지지층은 이를 “검찰공화국을 해체하려는 개혁 리더십”으로 해석하지만, 비판자들은 대통령이 행정부와 사법부의 세부 영역에 손을 뻗는 “직접 통치 습관”이 삼권분립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본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중반 청와대가 부처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이 거세던 시절, 조선일보는 「불필친교(不必親較)」라는 칼럼을 통해 최고 권력자의 과도한 직접 개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칼럼은 “임금이 일일이 친히 대조할 필요는 없다”는 뜻의 ‘불필친교’를 들어, 최고 권력자가 세세한 일까지 챙길수록 관료제는 무능해지고 권력은 제왕화된다고 경고했다. 통치의 덕목은 ‘모든 것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아는 절제’라는 역설이다.

   사마천의 『사기』 「진승상세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황제가 형사·재정 상황을 묻자 승상 진평은 “그 일엔 맡은 관원이 따로 있습니다”라 답했다. 황제가 “그렇다면 재상의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위로는 천자를 도와 음양을 고르고, 아래로는 백성이 제 자리를 찾게 하는 일”이라 했다. 권력자의 임무는 숫자를 꿰거나 사건을 직접 지휘하는 데 있지 않고, 제도가 제 기능을 하도록 설계하고 조정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반고의 『한서』 「위상병길전」은 더 극적이다. 승상 병길은 길가에서 싸움으로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만, 헐떡이는 소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춘다. 수행관이 “사람은 모른 체하고 소만 걱정하느냐”고 묻자, 병길은 “살상은 지방관의 일이고, 나는 연말에 그 성적을 평가하면 된다”고 답한다. 이어 “봄인데 소가 더위로 헐떡이면 시령이 어긋난 것”이라며, 삼공은 음양과 시세를 살피는 자리라고 덧붙인다. 지도자의 눈은 사건이 아니라 질서의 균형을 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제갈량이 매일 장부를 직접 대조하다가 주부 양옹에게 “정사에는 위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듣는다.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밥을 짓고, 닭은 새벽을 알리고 개는 도둑을 막는 것처럼, 역할이 분명해야 집이 돌아간다는 비유였다. 제갈량은 “소인의 근면에 매여 대인의 직분을 잊었다”고 자성했다. 과도한 꼼꼼함은 결국 조직의 기능 분업을 무너뜨린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은 이 같은 ‘역할의 경계’를 제도화한 장치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집행하며, 사법부는 해석·판단함으로써 어느 한 권력도 모든 일을 직접 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1987년 헌법 이후 한국의 대통령은 강력한 권한을 누려 왔고, 그 결과 ‘제왕적 대통령제’ 논쟁은 반복되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거치며 국내에서, 그리고 일부 해외 언론·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 권한 축소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사법부의 독립을 말하면서도 특정 재판과 검사, 변호인을 지목해 감찰을 지시한다면, 권력 분립의 경계는 다시 흐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불필친교’의 교훈은 단순한 유교적 절제가 아니라 삼권분립의 핵심 원리다. 진평의 말처럼 각 관원이 제 직분을 다하도록 조정하고, 병길처럼 사소한 사건보다 질서의 균형을 살피며, 제갈량처럼 장부를 내려놓고 큰 정사로 돌아가는 것—이 모두가 통치자의 절제된 권력 행사를 상징한다. 대통령이 모든 현안을 직접 지시하고 개입하는 행위는 단기적 정치 이득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반복되면 대통령제는 제왕제로 변하고, 삼권분립은 껍데기만 남는다.

   불필친교는 옛 제왕의 금언이 아니라, 오늘의 대통령이 새겨야 할 헌정의 경계선이다.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체(政體)를 지키는 일은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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