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0년간 한글을 사용한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왔고, 한글은 권력의 핵심부에서 만들어져 점차로 대중적인 문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글이 지난 500년간 암흑 속에 묻혀서 괄시만 받았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시각이다.
작성일 : 2025.11.17 09:25 수정일 : 2025.12.02 03:20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한글은 우리에게 근대화의 창발적 역동성을 발휘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오스만 제국은, 1445년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기계식 활자 인쇄기를 발명한 지 수백 년이 지난 1727년에서야 처음으로 인쇄술을 받아들였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인쇄술을 받아들이면, 지식을 장악하고 있던 엘리트층 중심의 기존 질서가 파괴될 것으로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폐쇄적 사고는 역사의 지체를 가져왔다.
그 결과 1800년 당시 오스만제국은 성인 남성 3%만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영국은 그 비율이 60%에 달했다. 이후 영국이 산업혁명을 거쳐 세계를 장악할 동안 오스만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기득권층들이 그들만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려던 탐욕으로 인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한글을 15세기에 발명하였지만, 500년 가까이 조선의 지배층들이 가졌던 모화사상, 그들의 폐쇄성과 편협성 때문에 오스만 제국과 같은 길을 걸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이런 부끄러운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 한글을 사랑하고 세계적인 언어체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한글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고 우리의 정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근대화를 언어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근대화는 자국어(민족어)을 확고히 하고 이를 확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중세시대에는 자국어 사용이 제한되었다. 중세시대에는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면서 보편어로서, 그 문명권의 공동언어 역할을 한 언어들이 있었다.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한자어, 아랍어 등이 그것이다. 라틴어는 기독교, 한자어는 유교와 도교, 산스크리트어는 힌두교, 아랍어는 이슬람교의 경전어였다. 이런 보편어의 질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자국어의 사용 노력이었고, 자국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근대가 싹트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근대에 자국어가 없는 민족국가는 상상하기 어렵다. 근대화를 언어생활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유교의 경전어인 한자어를 보편어로서 사용하던 한자 문화권에서 독립하는 과정이 근대화였다. 한자를 한글로 대체하여 언문일치의 자국어 생활을 하게 되는 과정이 근대화였던 것이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근대를 열어젖히는 힘은 더욱 더 커졌다. 한글 해독 능력이야말로 근대화의 바탕이자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국어학자들은 한글의 역사를 정음시대→언문시대→국문시대→한글시대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무미건조한 구분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글을 사용하는 국민이 확대되는 정치경제학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사용의 확대가 곧 근대화였다는 입장에서, 한글 사용자 집단의 중심이 바뀌고 사용자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한글의 역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하수는 ‘관변지식인 사용시대→주변부지식인 사용시대→중간지식인 사용시대→신흥지식인 사용시대→일반대중 사용시대’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한자는 사대부 지배층의 글자였고, 한글은 기층민의 글자였다는 이분법적 접근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시각이 아니다. 지난 500년간 한글을 사용한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 왔고, 한글은 권력의 핵심부에서 만들어져 점차로 대중적인 문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글이 지난 500년간 암흑 속에 묻혀서 괄시만 받았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시각이다.
중세시대에 형성된 보편어 세계를 박차고 그 자리에 자국어를 대치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내면의식은 중세의 모순적인 질서에 대항하는 바탕이 되었다.
구체적으로 한자문화권에 속한 한국, 일본, 베트남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 국가는 공동 언어인 한자를 자국어 방식대로 읽기 위해 발음기호에 가까운 자국 글자를 만든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어가 고립어 구조를 갖고 있고, 자국어는 교착어 구조라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향찰(鄕札), 가나(假名)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명사의 조사 그리고 동사와 형용사의 어미를 표시하게 된다. 베트남어는 중국어와 마찬가지로 고립어이지만, 베트남도 쯔놈(字喃)을 만들어 사용한다. 향찰, 가나와 쯔놈은 모두 한자의 파자(破字)이거나 한자를 조합하여 만든 글자였다. 하지만 한국은 1443년에 한글을 발명하여 향찰을 대체한다. 정리하면,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세 나라는 한자의 독해를 위해 자국어를 고안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가나라는 글자가 훈독과 음독을 동시에 하는 문자 체계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향찰(한글)과 베트남의 쯔남은 음독을 위한 발음기호 역할을 주로 하였다.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경전을 번역하는데 있어 음독과 훈독의 과정을 거친 후에 향찰(한글)과 쯔놈으로 번역한 책을 따로 발간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가나를 통해서 훈독과 음독을 동시에 하는 글자 체계였기 때문에 별도의 번역본을 발간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가나에 훈독과 음독이 섞여 있어 후대 사람들이 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약점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가나체계에서는 ‘번역서를 별도로 내지 않아도 모두 번역서이고, 모든 독해가 번역이다’는 장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한국은 주요 지식을 한자로 기록하여 전수하였으나, 일본은 가나로 기록하여 전수하였다. 가나는 한자와 가나를 섞어 쓰는 화한(和漢) 혼용체 문장을 주로 쓰는 체계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접근이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한자에 능통하지 않아도 가나를 통해서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던 점은 사유체계의 문자화, 독자적인 세계관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자체계의 차이에서 일본의 근대화가 우리보다 빨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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