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같은 신앙의 이름으로 갈라서다.
작성일 : 2025.10.13 07:36 수정일 : 2025.10.22 10:45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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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간) 탈레반 정부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수도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AFP] |
2025년 10월 초,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지대에서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 양측은 서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하며 포격과 공습을 주고받았다. 국경의 주요 관문인 토르캄과 차만이 봉쇄되자 수천 명의 주민이 고립됐다. 국제사회는 “극단주의의 재확산”과 “지역 안보 붕괴”를 우려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국경선 충돌이 아니다. 두 나라는 모두 ‘이슬람 국가’를 자처하지만, 정작 그 이슬람을 어떤 가치로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국가를 세울 것인가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번 분쟁의 뿌리는 바로 그 정체성의 충돌에 있다.
19세기 제국주의가 남긴 두런드 라인(Durand Line)은 여전히 두 나라 사이의 아픈 경계다. 하지만 오늘의 충돌은 단순한 영토 다툼이 아니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국가 운영의 절대 원칙으로 삼는 신정국가다. 반면 파키스탄은 이슬람 공화국을 표방하지만, 실제 권력은 군부와 관료가 주도하는 세속적 현실주의 체제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신앙을 말하지만, 한쪽은 신의 통치를, 다른 한쪽은 인간의 통치를 강조한다. ‘이슬람’이라는 같은 언어가 서로 다른 정치 문법으로 해석되면서, 두 국가는 결국 신앙의 방향을 두고 맞서게 된 것이다.
이념의 대립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바로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TP)이다. TTP는 2007년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여러 부족 무장조직이 연합해 만든 세력으로, 파키스탄 정부를 ‘비이슬람적 세속정권’이라 부르며 무력투쟁을 벌여왔다. 그들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과 같은 디오반디(Deobandi) 계열 수니파 신학을 따르며 샤리아 국가 건설을 꿈꾼다. 여기에 IS-K(이슬람국가 호라산 지부)까지 가세해 탈레반과 TTP, 파키스탄 정부 모두를 공격하고 있다. 이 지역의 국경은 이제 단순한 행정 경계가 아니라, 이슬람 해석의 전장으로 변했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공식적으로 TTP와 무관하다고 말하지만, 양측의 유대는 부인하기 어렵다. 같은 신학, 같은 부족 기반, 같은 명분이 그들을 잇는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승인과 원조를 의식해 TTP를 공개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지만, 국경지대에서의 은신과 이동을 묵인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TTP는 아프간 남부에서 사실상 ‘이념적 피난처’를 확보했고, 파키스탄은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탈레반의 종교적 정체성이 만들어낸 ‘신정적 연대’가 국경 긴장의 불씨가 된 셈이다.
파키스탄의 현실은 복잡하다. 헌법은 “주권은 신에게 속하되, 그 권위는 인민에게 위임된다”고 규정하지만, 실제 정치는 군부와 관료가 이끄는 세속 권력의 영역이다. 경제와 외교가 생존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체제에서 근본주의 세력은 “국가가 신을 배반했다”고 주장하며 무장투쟁의 명분을 얻는다. 파키스탄이 미국·중국·사우디와 실용 외교를 병행하는 한, TTP의 눈에는 이 체제가 ‘배교한 정부’로 비친다. 결국 이번 분쟁은 파키스탄 내부의 정체성 혼란이 외부로 확장된 결과이기도 하다.
두 나라 모두 이슬람을 국가 정체성의 중심에 두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은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를, 파키스탄은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는 체제를 선택했다. 이 차이는 ‘정권안보’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탈레반에게는 세속적 외세가 위협이지만, 파키스탄에게는 내부의 근본주의자들이 위협이다. 같은 신앙 속에서도 위협의 정의가 다르고, 이 차이가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 이념이 다른 두 국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이번 아프간–파키스탄 분쟁은 결국 총과 포탄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전쟁이다. 신의 뜻을 각자 다르게 해석한 두 국가는,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이념의 장벽을 쌓았다. 국가는 영토보다 자신을 규정하는 가치로 존재한다. 그 가치가 흔들릴 때, 국가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혼란으로 먼저 무너진다. 두 나라의 사례는 정체성의 혼란이 어떻게 안보를 위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국가를 지탱하는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변이라는 사실을 이 분쟁이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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