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략균형의 흔들림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작성일 : 2025.10.11 07:40 수정일 : 2025.10.22 10:46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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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10월 10일 야간,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 Reuters |
10월 10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은 거대한 군사 퍼레이드의 무대가 되었다.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을 기념한 이번 열병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체제의 강인함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이벤트로 보인다. 김정은은 “무적의 실체”를 강조하며 핵전력의 절대성을 선전했고, 중국의 리창 총리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등 외빈이 참석했다. 이는 북·중·러 연대를 과시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 중심에는 처음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이 있었다.
북한이 이 시점에 열병식을 강행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경제난과 제재 속에서도 체제 결속을 강화하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려는 계산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인사를 초청한 것은 고립을 돌파하려는 외교적 시도로 보인다. 군사적으로는 아직 시험 발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화성-20을 공개함으로써, 실제 성능보다 상징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 행보로 평가된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이미 보유했다’는 인식 자체를 확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화성-20은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의 연장선상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능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외형과 공개 영상 분석을 통해 더 높은 추력의 신형 엔진이 적용됐을 가능성이 거론되며, 다탄두(MIRV) 탑재나 기만체 운용을 염두에 둔 설계로 추정된다. 11축 이동식 발사대(TEL) 형태로 기동성과 생존성이 높아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행시험이 없어 성능은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만약 시험이 성공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략 환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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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화성-20'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Reuters |
이 미사일이 완성될 경우 북한의 핵전략은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다. 고체연료 기반의 신속 발사, 이동식 플랫폼, 다탄두 구조가 결합되면 탐지와 요격 부담이 급증한다. 이는 북한이 ‘보복보장형(second strike)’ 핵전력을 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런 분석은 가능성의 영역이지만, 실제로 능력을 확보한다면 억제와 협상의 구조가 바뀔 수 있다. 김정은 정권은 이런 ‘잠재적 능력’을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며, 핵전력의 완성 이미지를 통해 내부 결속과 대외 협상력을 동시에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화성-20의 실전 배치 가능성은 한반도의 전략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다탄두와 기만체 기술이 현실화되면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KAMD)는 포화(飽和, saturation) 공격에 취약해지고, 고체엔진의 신속 발사는 탐지·요격·결심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기존 방어망은 단일탄두 위협에는 대응 가능하지만, 복합 공격에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 실제 성능이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질적 비대칭’이 확대될 가능성만으로 전략 안정성은 흔들릴 수 있다.
이 변화는 미국의 확장억제에도 부담을 줄 것이다. 북한이 다탄두 ICBM을 확보한다면, 미국은 ‘서울을 위해 워싱턴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가’라는 고전적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확장억제의 신뢰성이 흔들리면 한국 내에서는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략자산 상시 배치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은 전략폭격기 전개나 핵잠수함 기항 등 가시적 행동으로 억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억제는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이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 조정 방향과는 정반대의 안보정책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확장억제의 현실적 운용은 동맹과의 신뢰 강화를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안보 역시 복합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상징적 위협이 국내 여론과 정치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중기적으로는 방어 비용과 연합작전 부담이 커질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전략 불균형이 구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속도와 범위가 비대칭적으로 작동하면, 오판이나 과잉 대응의 위험이 커진다. 북한은 즉각적 결단을 내리는 반면, 한국은 동맹 협의와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냉정한 판단과 동맹 신뢰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기다.
이 위협에 대응하려면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조기경보와 탐지 능력을 강화하고 인공지능 기반 교전관리체계로 요격 속도를 높여야 한다. 둘째, 한미 간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제도화하고 전략자산의 순환 전개를 일상화해야 한다. 셋째, 한미일 3각 협력체를 통한 정보와 경보 데이터의 실시간 공유가 필요하다. 동시에 정밀타격, 사이버, 우주 영역의 역량을 키워 방어와 공격의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화성-20의 등장은 한반도 전략질서의 경고음이다. 한국은 이 위기를 단기적 충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 구조개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미동맹을 기술적·정치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일본과의 협력 및 중국과의 전략적 관리까지 포함한 종합적 균형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억제할 수 없다. 이제는 억제력을 강화하되, 오판과 충돌을 줄이는 위험관리(risk management)와 제한적 대화 채널의 유지를 병행해야 한다. 힘으로 평화를 지키되, 대화로 위기를 관리하는 이중전략이 요구된다. 균형은 기술이 아니라 지혜의 산물이며, 냉정한 억제와 절제된 소통이 함께 갈 때만 진정한 안정이 가능하다. 화성-20이 던진 과제는 명확하다. 한국은 ‘위기관리의 기술’과 ‘전략적 결단의 균형’을 동시에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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