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때마다 달라지는 정치적 해석 속에서 군은 혼란을 겪고 있다. 헌법적 정체성에 기초한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군의 중립성과 안보 수호를 동시에 지키는 길이다.
작성일 : 2025.09.24 01:22 수정일 : 2025.09.24 01:35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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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 군은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안보 사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이런 모순은 군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흔들고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사진: 제73주년 국군의 날 행사, 국방부] |
흔들리는 명예와 자긍심
최근 들어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들의 전역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개인적 진로 문제나 처우도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군의 위상과 명예가 떨어졌다”, “전통적 가치가 흔들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군 내부에서조차 정체성의 혼란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군은 본래 헌법과 국가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행동이 어떤 때는 칭찬받고, 다른 때는 비난받는다.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일이 반복되면, 군의 자부심은 약해지고 장병들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2024년 비상계엄이 남긴 혼란
2024년 12월 3일, 한국 사회를 뒤흔든 비상계엄은 이러한 혼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며 비상조치를 선포했었다.
군은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당시 많은 장병과 지휘관은 이를 국가안보의 위기나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정당한 명령으로 이해했을 수 있다. ‘국가정체성의 위기’라는 표현 역시 군 내부에서는 곧바로 국가안보의 위기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뒤 같은 사건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일부에서는 계엄을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고, 군 전체가 “계엄 옹호세력”이라는 낙인을 떠안았다. 정치적 판단에 개입한 일부 인사는 있었을 수 있지만, 대다수 장병이 단순히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군 내부에는 깊은 가치 혼란이 남았다.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안보 사이의 딜레마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안보를 수호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치가 정권이나 상황에 따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행동이 어떤 때는 “헌법적 충성”으로 평가되지만, 다른 때는 “민주주의 위협”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군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흔들고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킨다.
터키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터키군은 오랫동안 세속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여기며 이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1960년, 1971년, 1980년, 1997년에 잇따라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은 “정체성 수호”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절차와 정치적 중립을 무너뜨렸다.
한국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군은 국가안보 수호라는 명분 속에서 움직였지만, 정권 교체 후 같은 행동이 정반대로 해석되며 가치 혼란을 겪고 있다. 터키처럼 제도적 안전장치가 부족하면, 군은 언제든 정치적 중립을 잃을 위험에 놓인다. 그렇기 때문에 군이 안보와 중립 두 가지 원칙을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안정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한 해법은 무엇인가
앞으로 중요한 것은 특정 사건을 단순히 옳고 그르다로 재단하는 일이 아니다. 더 시급한 것은 안보의 기준이 정권 교체에 따라 극단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첫째, 군의 임무와 권한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그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군의 역할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돼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곤 한다. 따라서 단순한 법 조항에 머물지 말고, 이를 현실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과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통수권자의 명령과 헌법적 가치가 충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군이 어떤 절차와 원칙을 따라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방부, 합참, 국회, 법률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초당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면, 군은 정치적 오해를 줄이고 헌법적 충성의 조직으로서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
둘째, 사회적 담론 차원에서 개인의 정치적 판단과 군 조직 전체의 임무 수행을 구분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 전체를 매도하기보다, 책임의 주체와 범위를 명확히 가려내는 사회적 성숙이 필요하다. 언론과 정치권, 시민사회가 장병이나 군 조직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적 신뢰를 해친다. 따라서 군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행위 주체별 책임성을 구분하는 태도 위에 서야 한다.
셋째, 군이 정치적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국가안보의 큰 방향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국방정책의 핵심 부분은 초당적으로 합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예컨대 국회 차원에서 장기적 국방정책 합의를 제도화하거나, 정권과 무관하게 존속되는 국방정책위원회 같은 합의 기구를 운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군은 정권 변화의 파고에 흔들리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다.
맺음말
군 간부들의 전역 증가와 내부의 가치 혼란은 단순한 조직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정치적 해석과 국가안보 사이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딜레마의 결과이다. 2024년의 계엄 사례는 그 전형적인 장면이다.
군이 당시 상황을 국가안보 수호의 정당한 명령으로 이해했을 수 있음에도, 이후 정치적 담론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규정된 현실은 군과 사회 모두에 큰 부담을 남겼다. 앞으로는 안보정책이 정권 교체에 따라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헌법적 정체성과 국가안보를 기준으로 한 안정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는 군을 집단적으로 매도하기보다 책임의 범위와 행위 주체를 구분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군의 명예를 지키고 국가안보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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