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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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핵보유국 북한?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다는 관점은 결코 현실적 접근이 될 수 없다.

작성일 : 2025.09.22 11:32 수정일 : 2025.09.23 04:47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2025년 9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미 간 북한 핵동결 합의를 한다면 "비핵화를 위한 잠정적 응급초치로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사진: BBC NEWS 코리아]

 

   지난 9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당분간 생산을 동결하는 데 합의할 경우, 이에 동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종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추가 생산과 실험을 멈추게 하는 ‘동결(freeze)’을 중간 단계로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여권 일각이 ‘현실적 접근’이라 평가한 반면, 야권은 “안보 기반을 흔드는 위험한 발언”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도 주목했으나, 대체로 비확산 규범(NPT norm)과의 충돌, 일본과 미국의 안보 전략에 미칠 파급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는 현실적 사고와 현 여권의 ‘위기관리형 정치 성향’이 작용했다고 분석된다. ‘비핵화만 고집하다가는 아무런 진전도 없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을 모색한다’는 명분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 핵정치에서 흔히 ‘사실상 인정 전략(De facto recognition strategy)’이라고 불리며, 현실주의적 포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상대의 핵무장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위험이 크다. 이런 접근을 과연 ‘실용적 현실주의’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위험한 수용 전략(risky accommodation strategy)’이라 불러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이 구상이 실효적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최소한 북한이 ‘핵·미사일 생산과 시험의 전면 중단’, ‘핵분열성 물질(fissile material) 추가 생산 금지’, ‘IAEA 사찰 수용’, 나아가 ‘비선언 시설 공개’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위반 시 자동으로 제재가 복원되는 스냅백(snapback) 장치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할 때만 동결은 단순한 임시 조치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북한이 보여 온 행태에 비추어 봤을 때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체제 생존의 보장, 미국과의 직접 협상 지렛대, 국제적 위상 확보를 동시에 추구해 왔다. 1994 제네바 합의나 2005·2007년 6자회담 합의에서도 북한은 동결과 불능화를 부분적으로 수용했지만, 언제든지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조치만 취했을 뿐이다. 핵 전략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억지(deterrence)와 위신(status)을 이미 확보한 북한은 감축이나 폐기보다는 현 상태 고착을 더 큰 전략적 이익으로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앞에서 제시한 조건들을 충족하기는 북한의 의도와 구조적 동기에 비추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평가해야 한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며, 현 수준에서 핵 능력을 동결하는 ‘스몰 딜(small deal)’을 다시 꺼낼 가능성이 있다. 이미 2019년 하노이 협상에서 ‘동결과 제재완화의 교환’이라는 구도를 시도했던 전례가 있다. 트럼프식 접근은 단기 정치적 성과에는 유용하지만, 장기적 비핵화의 동력을 약화시키고 북한에게는 핵 보유 고착의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만약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와 이재명 대통령의 구상이 동시에 현실화되어,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북한은 동결을 협상 종착지로 삼으며, 국제사회로부터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확보하려 들 것이다. 이어서 검증을 회피하면서도 위성 발사, 고체연료 엔진 실험 등 ‘민수 명목의 군사적 진전’을 계속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동결했는데 왜 추가 보상이 없느냐”는 여론전을 펼치며 국제사회의 보상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또 다른 전략은 한국과 미국을 갈라치기(decoupling)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 감축이나 한미연합훈련 중단 같은 민감한 요구를 내세우며 한국 내부의 안보 논쟁을 자극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하고, 한국의 억지·방어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소규모 도발을 이어가면서 합의 틀 자체는 깨지 않고 보상만을 최대화하는 ‘벼랑끝-완급조절 전략’(brinkmanship with calibration)을 구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실상 인정-동결’ 구도는 북한이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전개는 한반도를 넘어 국제사회에도 파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의 북핵 억지력이 약화되면 일본은 자위대 강화와 핵무장론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고, 중국은 한미동맹의 균열을 기회로 삼아 지역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되고, 동아시아 전체가 핵확산 도미노와 군비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비확산 체제(NPT regime) 자체가 흔들리며, 국제적 규범의 권위가 훼손되는 결과도 불가피하다.

   결국 동결-감축-폐기라는 경로는 이론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만,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생존의 보증으로 여겨 왔고, 국제사회의 단계적 보상을 협상 카드로 삼을 뿐 폐기로 나아갈 의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사실상 인정’이라는 유혹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동맹 강화와 억제력 제고, 강력한 검증과 자동 제재 복원 장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규범을 흔드는 것은 결국 현실적 접근이 아니라 위험한 착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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