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무한히 많은 말들을 만들어 표현할 수 있는 데, 이것을 언어의 창조성이라고 한다. 말과 글의 가짓수가 정해져있고 소리를 내는 형식도 정해져 있지만, 한정된 소리로 계속해서 많은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방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작성일 : 2025.09.10 08:26 수정일 : 2025.09.10 08:40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한글과 우리 말의 우수성
만약 인간이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개와 벌처럼 간단한 의사소통만으로 살아갈 것 같다. 개는 주인에게 놀아달라고 할 때 ‘멍멍’ 소리를 내고, 상대방을 위협할 때는 ‘으르릉’ 거린다. 벌은 꿀이 자신의 주변에 있을 때에는 원 모양의 춤을 추고, 멀리 있을 때에는 팔자 모양의 춤을 춘다. 이처럼 몇 가지 소리와 몇 가지 몸동작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언어를 이루는 두 축은 말과 글이다. 말과 글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언어학자들은 글이 말소리를 담아두는 도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어고고학의 입장에서 보면 문자는 발생론적으로 말과 관련을 맺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었다. 현대 문자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쓰였던 그림문자는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전해주기는 하였지만, 말로 재구성되지는 않았다. 글자가 말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일정한 글자의 표현이 매번 같은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훗날 글자가 소리를 드러내면서부터 문자는 곧 언어의 그림자 구실을 하게 된다.
언어학적으로 말소리의 음운이 드러나고 더 나아가 형태가 드러나면서, 글자는 이야기의 전달 수단에서 말의 복사물로 그 성격이 변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말과 글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서양의 라틴 Alphabet의 경우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일찍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설형문자 형태로 시작된 라틴 Alphabet은 페니키아에서도 모음문자는 없었으나, 그리스로 옮겨 가서 그것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그리스에서 운문의 발전이 일정한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뜻글자인 중국 한자의 경우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고 난 이후였다. 우리의 경우는 15세기 중반에 소리글자인 한글이 창제되면서, 우리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언어생활을 정상화할 수 있는 언문일치의 토대가 갖추어진 것이다.
주시경 선생은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일 뿐만 아니라 글은 말을 닦는 기계’라고 하셨다. 사람은 ‘말’로써 말하고 듣고, ‘글’로써 쓰고 읽는다. 사람은 자기가 눈으로 본 대상, 그리고 머리로 생각한 의미와 사유체계를 말로 표현하고, 상대방은 그것을 알아듣게 된다. 이른바 말하기와 듣기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을 글자로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읽어서 이해하게 된다. 이른바 쓰기와 읽기이다.
이러한 기능 이외에 언어는 여러 가지 특성을 갖는다. 첫 번째는 사회성이다. 특정한 대상이나 개념을 무엇이라고 부르자고 정하는 사회적인 약속을 의미한다.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약속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개개인이 임의로 바꿀 수는 없고, 공동체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자의성이다. 음성과 의미가 결합된 기호로 굳어진 것이 언어이다. 그런데 언어는 필연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의적으로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일정한 내용을 일정한 형식을 빌려 나타내지만, 그 내용과 형식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발에 신는 물건을 가리켜 한국인은 신발이라고 하지만, 미국인은 Shoes(슈즈)라고 하고 일본인은 구츠라고 한다.
세 번째는 역사성이다. 언어는 장기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새로 생기고, 끊임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언어의 역사성은, 언어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회성’과 대비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네 번째, 언어로 무한히 많은 말들을 만들어 표현할 수 있는 데, 이것을 언어의 창조성이라고 한다. 말과 글의 가짓수가 정해져있고 소리를 내는 형식도 정해져 있지만, 한정된 소리로 계속해서 많은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방법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의 표현도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능력을 반영하는 언어의 창조성은 다시 인간의 능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언어의 기능과 특성으로 견주어 볼 때, 한국어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유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존재의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우리의 ‘창발적 역동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말과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촌의 언어를 한글과 같은 소리글자와 중국어와 같은 뜻글자로 나누기도 하지만, 구조나 형태의 관점에서 고립어, 교착어, 굴절어 등 3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고립어는 문장을 이루는 낱말이 형태상의 변화 없이 그대로 쓰이고, 문장 내에서 문법적인 관계나 역할은 어순에 의해서 결정된다. 대표적인 고립어는 중국어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중국어 ‘我看書’ 그리고 ‘我有美畵’를 보자. 한국어로 ‘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그림을 갖고 있다’이다. 영어로는 I read a book 그리고 I have a beautiful painting’ 이다.
한국어에서는 ‘나’라는 명사에 주격 조사인 ‘는’이 붙고, ‘책’과 ‘그림’에는 목적격 조사인 ‘을’이 첨가되어 문법적 역할과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준다. 영어의 경우는 ‘I’는 ‘나’라는 뜻을 나타내면서 주격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그러나 중국어의 경우 ‘我’는 ‘나는’이나 ‘I’처럼 문법적 기능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我有美畵의 경우, 我나 畵에 조사도 없고, 美에는 어미변화도 없다. 그래서 고립어 체계에서 각 글자는 문장내의 위치에 따라 주어, 동사, 목적어로 추정하여 해석된다. 한국어의 경우 ‘아름답다’에서 ‘아름다운’으로 어미가 변화하여 형용사 역할을 한다.
둘째, 굴절어는 단어가 문장에서 사용될 경우 단어 자체의 형태가 변화한다. 변화된 단어를 통해서 문법적 기능을 파악한다. 인도유럽어족과 셈어족의 여러 언어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 교착어는 위에서 살펴본 고립어와 굴절어의 중간적인 성격을 지닌다. 명사에 격조사가 붙어서 단어의 문법적 기능을 알게하고, 동사와 형용사의 경우에 어간, 어미가 있고 어미는 변화한다. 물론 굴절어처럼 어간에서 어형교체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국어, 일본어, 터키어 등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15세기 중반에 한글을 창제하기 전까지 우리 민족은 중국글자인 한자를 차용하여 썼다. 교착어 문법구조를 가진 우리 민족이 고립어인 중국 한자를 차용해서 우리말과 생각을 표기하였다. 이러한 언문 불일치 현상이 1000년 넘게 지속되었다.
이처럼 우리글자로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 상대적으로 늦었다. 한글을 발명한 이후에도 한자의 지배에서 벗어나는데 5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한자생활에서 벗어나 한글의 음성주의로의 진입, 즉 언문일치가 이루어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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