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한옥 거리는 근현대사의 집약 처라 할 수 있다. 행정동으로는 종로 1,2,3,4가동을 말한다. 익선동은 조선의 행정 단위였던 정선방의 ‘선’과 익동(翼洞)의 ‘익’자를 합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흥선대원군의 운현궁부터 해어화(解語花) 권번에서 연유한 소리꾼들의 예술 세계, 그리고 오늘날의 젊은이의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기 까지 익선동의 한옥 거리
작성일 : 2025.09.04 01:41 수정일 : 2025.09.04 09:37 작성자 : kangsabin1, 주신혜 (kangsabin1@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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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3가 익선동 거리주변 지도 |
■ 익선동 한옥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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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선동의 한옥 내부 모습 |
익선동은 일제강점시대 행정 구역 개편으로 탄생한 지명이지만, 다른 한편 일제의 주거지 침입에 대해서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1920년대 말 일본이 청계천 이남의 남촌에서 북촌으로 이주하면서 북쪽이 일본 주거지로 변할 위험에 처하자, 당시 조선의 최초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민족주의자 정계선은 북촌을 비롯한 체부동(서촌), 창신동, 그리고 이곳 익선동에 한옥 마을을 건설하기로 하였다.
익선동은 당시의 누동궁(철종의 형 집:165번지)과 부근 166번지, 33번지 등의 한옥들을 인수하여 여러 채의 작은 한옥(평균 20평 규모, ㄷ자형 표준 모델)으로 건설하여 우리 백성들이 구입하여 살 수 있도록 한 것에서 비롯된 한옥거리이다. 당시 보통 한옥들이 50여 평 이상이었던 것을 20평 규모로 모듈화하여 빼곡히 지음으로써 많은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것은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 철거를 통한 새로운 개발계획보다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편의에 따라 개조하여 옛 것을 살리되 현실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마무리된 지역이다. 다양한 먹거리 뿐만 아니라 전시장, 찻집 등으로도 활용되어 주민들과 공존을 모색하는 형국이다.
■ 소리꾼들과 예술인들의 모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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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1,2,3,4동 행정동사무소에 위치한 우리 소리박물관 |
익선동에는 당시 벽초 홍명희를 비롯하여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 이해조 등의 문인뿐만 아니라 명인 명창들의 집약 터였다.
특히 벽초 홍명희를 비롯한 문인들의 산실이며 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홍명희의 집은 당시에 문인들끼리 모여 담론하는 가운데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도 하였으며, 조선일보를 통하여 게재된 ‘임꺽정’은 일제 강점기 한글 어휘의 보고로도 평가 받고 있다. 홍명희의 아들 홍기문도 민족 문학자․국어 학자였으며, 그의 손자 홍석중이 쓴 「황진이」는 북한 소설로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만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면서 2007년 영화화된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송혜교가 주인공 황진이 역을 소화했다.
조선말 일제 강점기의 3대 천재는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였다. 이들의 행로는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민족의 독립과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말년에 친일시비도 없지 않았다. 그 중 홍명희는 북한으로 망명하여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하고 죽었지만, 그의 독립운동의 열정과 문학적 능력은 분명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서화가 김용진과 이병직도 살았다(이들이 살던 집이 후에 요정의 원조인 유명한 ‘오진암’이다.) 무엇보다도 익선동은 소리꾼들의 고향이었다. 당시 대구 출신 소리꾼 김초향은 그의 집을 소리꾼들의 집합소(조선음률협회)로 쓰게 기증했다. 김초향은 동편제(송만갑), 서편제(박록주) 대가들에게서 사사했다. 이후 조선음률협회는 조선성악연구회로 간판을 바꾸고 전국의 소리꾼들을 모여들게 하였으며, 증언에 따르면 인근 야외에서 기념 모임을 이어갔다.
다른 한편 이러한 명창, 명인 소리꾼들의 집결은 익선동에 1920년대부터 권번으로 불리는 기생 조합(양성소)도 번창하게 하였다. 기생에게는 본래 시문(詩文)·음곡(音曲)·습자(習字)·가무(歌舞)·예의(禮儀)를 가르쳤는데, 음곡은 가곡(歌曲)과 가사를 가르치고 춤은 정재(呈才)를 가르쳤다. 그 뒤 권번에서는 시조와 경기 잡가·서도잡가·민요 등을 추가하여 이습시켰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생은 전통사회에서는 연회 등에서 유흥을 담당했으나, 근대사회에서는 전통 예악의 전승자로서 활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권번에는 1타 기생과 2타 기생이 있었고, 일부는 명인 명창으로 커 가기도 하고, 연예인(가수 등)으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영화 「해어화(解語花), 박흥식 감독, 한효주 주연」에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해어화는 ‘말을 이해하고, 말을 하는 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 영화의 배경은 익선동 주변을 묘사하기 위해 종삼 지역과 종묘 담벼락 등이 나온다.
■ 요정 정치와 근현대화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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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암의 터에 세워진 아이비스 호텔 모습 |
권번은 공식적으로 태평양전쟁이 발생과 더불어 일제의 강제 조치로 폐쇄되었다. 하지만 익선동 지역(종삼 지역)이 근대화이후 시기에 들어서서 요정들이 익선동 곳곳에 상당히 자리하였는데, 그 전성기는 1960-80년대이다. 1953년도에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으로 되어 있는 ‘오진암’ 및 ‘대하’가 1950년대부터 영업을 시작하였고, 70년대 ‘명월’과 ‘청풍‘ 등이 등장하면서 80여개의 요정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 때 이들 요정들이 서울시 최대 납세자들이었다고 하니 그 전성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후, 88올림픽을 계기로 사양길을 걷다가 9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오진암(梧珍庵)‘은 마당 가운데 ’오동나무‘가 있어서 비롯된 이름으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위한 이후락(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내각 부수상)의 회담 장소로도 유명하였다. 오진암(지금은 사진처럼 호텔로 바뀜)은 당시 삼청각, 대원각(길상사로 바뀜)과 함께 요정정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호텔 한켠에 ’정자’만 남아 있고, 그 원래 건물 시설은 부암동으로 옮겨져 있다.
종삼 익선동 거리에는 기생집에 더불어 악기점과 한복집, 그리고 점집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낙원 상가’ 악기점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단성사’가 개봉관의 시초라면, 동시상영의 추억 ‘파고다 극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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