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강대국으로부터 국가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걸맞게 키우거나(自强) 균형을 위한 안보체제(遠交近攻)를 구축해야 한다.
작성일 : 2025.08.21 05:45 수정일 : 2025.08.21 06:42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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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5일에는 알래스카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18일에는 백악관에서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평화협정을 위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 워싱턴포스트.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 18일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협상 방안을 모색했다. 알래스카에서의 미·러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금지 문제에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영토할양 문제에서 교착됐고, 워싱턴에서의 미·우 정상회담은 미국의 중재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러시아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세 나라가 모두 참여하는 3자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합의 도출의 난항이 예상된다.
전쟁은 이미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고, 민간인 피해도 심각하다. 돈바스와 헤르손 지역을 둘러싼 전선은 교착 상태에 있으나 러시아는 점령지 방어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반격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내 피로감이 확산되면서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에너지·식량 위기와 결부된 전 세계적 파급력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전 논의는 불가피하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기에는 조건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의 협상 목표는 명확해 보인다. 크림반도의 영구 귀속, 돈바스 지역에서의 특별 지위 확보 등 전쟁을 통해 확보한 영토를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서방의 군사적 개입을 제한하는 안전지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독립된 주권국가라기보다 역사적 맥락에서 러시아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를 외교·군사적으로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협상에서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영구적 귀속, 동부 점령지에 대한 특별 지위를 관철시키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사실상 현상 변경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으려는 전략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협상 목표는 주권과 영토의 보존에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을 용납할 수 없는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최소한 2014년 이전의 국경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현실과 국제사회의 지원과 정치적 입장이란 한계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NATO 수준의 안전 보장과 장기적 재건 지원을 협상 카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의도는 영토 보전과 안전 보장이라는 두 가지 축을 지켜내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협상은 전쟁의 연장이자 외교적 생존 전략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EU는 공통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속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지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글로벌 차원에서 러시아 견제를 통한 전략적 균형 유지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국내 정치·경제적 요소가 협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EU는 난민·에너지 위기 등 직접적 이해관계로 인해 조기 휴전을 선호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 견제라는 구조적 목표를 우선시하는 것과 달리, 유럽은 전쟁의 종식과 안정이라는 현실적 필요에 더 민감하다는 차이를 보여준다.
한편, 이번 협상을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두 사례 모두 전쟁 당사국의 이해보다 강대국의 전략적 계산이 협상 과정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전은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일단락된 반면, 러-우 전쟁은 정전 없이 곧바로 종전 협상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한국전은 유엔군이 제도적 보증을 했으나 러-우 전쟁에서는 국제기구가 배제된 채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구도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분석보다 더 중요한 시사점은 비강대국이 겪는 지정학적 운명의 유사성이다. 특히, 종전단게에서는 인접한 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따라 국가의 존립이 흔들리고, 협상은 당사국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 우크라이나의 현재 처지는 1953년 우리의 상황을 데자뷰(déjà vu)처럼 불러일으킨다. 국제사회의 보증이나 외부 동맹이 절실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국방력과 경제적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국가 안위는 외부의 협상 테이블에서 쉽게 거래될 수 있다.
1953년과 지금의 한국은 경제력이나 국방력 등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정학적 특성은 변하지 않았으며, 역사의 데자뷰가 항상 반복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한미동맹의 질적 변화 속에서 나라의 안보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내 정치적 상황은 신흥안보 관점에서 심각한 안보문제로 창발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사례는 우리에게 반사적 교훈을 준다. 자강(自强)과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균형 속에서만 국가의 생존이 가능하다. 작금의 우리 현실이 이러한 명제을 유념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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