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이번 분쟁의 원인이 굉장히 케케묵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매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국가 간의 관계에 작용하고 있다.
작성일 : 2025.07.25 02:34 수정일 : 2025.07.27 07:27 작성자 : 백자성 (js25172@newssiun.com)
![]() |
|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 사원의 모습. [사진: 에펨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
7월 24일,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에서 직접적인 교전과 공습이 이어지면서 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국 간의 갈등은 올 5월 말부터 재증폭되기 시작했다. 태국 우본 랏차타니(Ubon Ratchathani)와 캄보디아 프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주 사이의 분쟁 지역에서 소규모 교전이 발생하여 캄보디아 병사 1명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양국 외교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6월 13일, 캄보디아는 태국으로부터 전기 및 인터넷 수입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러던 중 7월 23일, 국경지역에서 태국군 병사가 지뢰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캄보디아가 최근에 지뢰를 설치했다는 태국의 주장에 캄보디아가 반박하면서 양국은 외교사절을 철수하고 국경을 봉쇄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7월 24일 오전, 양국 병력 간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프라삿 따 모안 톰(Prasat Ta Muen Thom) 사원 인근을 포함해 여러 분쟁 지점에서 소규모 교전이 발생했으며, 캄보디아군은 포와 로켓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은 즉각 F‑16 전투기 6대를 국경지역에 배치했고, 이 중 1기로 캄보디아 군사 목표를 폭격했다. 캄보디아군의 공격으로 최소 11명의 태국인이 사망했으며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또한,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 태국 내 병원과 주거지까지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25일 현재 112,000명 이상이 이주 및 대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분쟁이 격화된 7월 24일 직후 즉시 전투 중단(immediate ceasefire)과 민간인 보호를 양국에 강력히 요청했다. 미국 대사관은 방콕 및 프놈펜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태국‑캄보디아 국경 인근 지역의 여행과 체류 자제를 권고했다. 향후, 전통적 동맹국인 태국을 지지하는 구조 속에서 유엔 안보리 참여 요구 등 합리적 개입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이번 분쟁에 대해 깊은 우려(deep concern)를 표하며, 양국에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중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제안을 리암(Ream) 해군기지 확장 등 군사·경제 인프라 협력을 지속하며, 향후 갈등 완화 시 실질적 영향력을 사용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기도 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갈등은 단순히 최근의 국경 다툼을 넘어선 깊은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갈등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지역의 당그레크(Dangrek) 산맥에 위치한 프레아 비헤르 사원 주변은 지리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다. 산맥의 분수령을 기준으로 국경이 설정되었으나 사원의 정확한 위치가 산맥의 어느 경사면에 속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분쟁이 지속되었다. 더군다나 이 사원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양국 모두에게 양보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세기에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국경선이 다시 설정되었다. 이때 프랑스와 시암(태국)이 1904~1907년에 체결한 조약에 따라 지도를 제작하면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캄보디아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태국은 이 지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원 주변 지역의 지리적 모호성 때문에 이후에도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1962년 캄보디아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의 소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여 승소했고, 2013년에도 ICJ는 이 판결을 재확인했다. 최근까지도 태국 왕실과 군부의 민족주의 자극, 캄보디아의 민족주의 및 피해 의식 등 양국의 국내 정치적 상황이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었다.
한편, 양국의 역사에는 질곡의 과정이 있었다. 13세기 이전까지 동남아시아의 패권국이었던 크메르(Khmer) 제국은 태국의 전신인 수코타이(Sukhothai)와 아유타야(Ayutthaya) 왕국의 등장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특히 1431년 아유타야군에 의해 앙코르 톰(Angkor Thom)이 함락되면서 크메르 제국은 사실상 붕괴했고, 이후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탈당하는 지역이 되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크메르 제국이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9~11세기에 건축된 힌두교 사원으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같은 크메르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캄보디아인들에게는 민족적 자부심과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의 배경에는 국내정치 상황, 국제외교 상황, 경제적 요인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지리적 요인, 역사적 요인, 민족ㆍ문화적 요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을 민족주의의 갈등과 포스트식민주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고대 유적, 민족 정체성을 둘러싼 상호 경쟁과 역사적 기억이 국가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프랑스 식민지배 시 국경 획정의 모호성에 있었다. 중동 분쟁, 인도-중국의 국경 분쟁 등도 포스트식민주의 스펙트럼 내에 놓여 있다.
어찌보면 양국 간 분쟁의 원인이 굉장히 케케묵은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매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국가 간의 관계에 작용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결코 소멸하지 않고 윤회하는 듯한 이 분쟁의 원인들은 대부분 현재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오늘날 태국과 캄보디아의 갈등은 약 8세기 전의 분노와 100여년 전에 있었던 제국의 완력을 먹고 자랐다. 오늘의 국제질서와 국가 간 관계가 미래에 어떤 모습의 분쟁 원인으로 되살아날 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인류의 운명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역사적 순환의 이치를 이해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지혜가 중요해 보인다.
이번 주의 시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