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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탐방 ②- 젊은이의 거리

-왕십리(往十里)는 리(里)를 쓰지만, ‘마을’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거리’의 의미다. 무학대사와 도선선사의 일화가 어린 지역이다. 한양대가 들어선 이후, 오늘날은 젊은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비오는 왕십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비오는 날 취재를 갔다-

작성일 : 2025.07.17 11:42 수정일 : 2025.07.30 11:10 작성자 : kangsabin1, 주신혜 (kangsabin1@newssisun.com)

비오는 날의 왕십리 역사

 

왕십리는 최근 20-30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거리이기도 하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카드사들이 자체 카드 사용 빈도와 연령대를 통해 분석한 자료 의하면, 2010년대 후반에는 민자 역사 건립과 철도 중심지로 부상한 이후 젊은이들(20-30)2번째로 많이 카드를 사용한 곳으로 인정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주로 7만 여명의 유동 인구가 하루단위로 움직이는 것으로 잡히고 있다. 여기에는 2012년 수인분당성 연장 운행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광장이 생긴 초기까지에는 유동인구도 적고 발전이 정체되어 그 원인 분석이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 때 사양의 길을 걸었다는 의미이다. 당시 왕십리 역세권이 침체된 이유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왕십리 주면이 공공부분이 13.9%를 차지한다는 점,  기차길과 기차보관소 등이 주요시설로 자리한다는 점, 사람들이 환승만하고 머물지 않는 점을 들기도 하였다(한양대 주승훈 교수논문참조).

 

 하지만 오늘날 왕십리는 역 출구마다 다양한 문화 거리와 광장, 맛 집 거리가 있다. 왕십리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왕십리 광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민자 역사인 비트플렉스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한 것이며, 건물 안에 젊은이들이 좋아할 각종 편의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개봉관 CGV도 자리하고 있고, 올리브 영도 있다.

 

민자 역사 앞 왕십리광장은 2008919일 개장했으며, 서울광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민자 역사와 광장이 만나는 곳에 계단형 소공연장도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연도 이어진다. 취재진들이 갔을 때는 전통 사극을 결합한 젊은 노래패들의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왕십리 역사와 광장이 만나는 곳에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왕십리 6번 출구는 젊은이들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나온다. 왕십리역 6번 출구 지역은 한양대를 떠나서는 상권을 말할 수 없다. 거의 대학가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나 스포츠시설이 많지 않으며, 등산객들이 올만한 곳도 아니다. 주변에 다른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꺼리가 없는데, 젊은이들이 많은 것은 대학생들이 소비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학생, 대학원생, 교수 및 교직원 약 28천 여명의 생할 인구를 가지고 움직인다. 학교 구성원들로만으로도 소비 구조가 갖춰진다는 의미이다.

 

한양대는 백남 김연준 박사에 의해 1939년 종로의 수운회관에 세운 동아공과대학이 모태가 되어, 1959년 한양대학교라는 현재의 명칭과 자리를 토대로 발전하였다. 김연준 박사는 함북 명천군 출신인데, 같은 연희전문 친구인 주성하 세종대 설립자가 학교를 세우자 자신도 서둘러 학교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씨 집안이 이후 세종 호텔과 같은 다른 업종에도 관심을 둔 것과 달리 김연준 박사는 교육 사업에만 집중하여 안산캠퍼스(ERICA 캠퍼스) 설립에도 힘을 쏟았다.

 

 그래서 낮에는 보통 한산하다. 방학에는 더욱 그렇다. 여느 대학가가 그렇듯. 그래도 밤이 되면 제법 활성화된다. 방학이더라도. 하지만 평소 학기 중인 경우 밤에는 어지간한 가게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대학가 규모에 비해 큰 편은 아니다. 학생들이 중심이된 상권이다보니 학생들의 주머니를 생각하는 포차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6번 출구 지역을 중심으로 왕십리역 주변에 40여개의 포차가 있다. 이름도 신선한 것들이 있다. ‘친구친구포차’, ‘한사발 포차’, ‘삼팔팔 포차’, ‘신사숙녀여러분 포차.

 
왕십리에 있는 젊은이들의 포차거리

 

 원래 왕십리는 마장동 도축장의 부산물들을 이용한 곱창 골목으로 유명하였다. 대부분 좋은 부위들은 호텔이나 고급 고깃집으로 판매되고, 남은 부산품들이 부근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게 된 것이다. 오늘날도 그래서 왕십리 먹거리하면 곱장을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유이다. 조금 시기가 지나면서 도축장 직주근접의 장점을 살린 특화 고깃집이 생기기도 하였다. 실제로 마장동 도축장의 생고기를 직접 공급하여 고기맛을 한 껏 끌어 올렸던 '대도식당'이 고기 맛집으로 자리한 배경이기도 하다.

 

  왕십리는 지금 교통의 요지이면서 뉴타운 지역으로서의 변모를 거의 마쳤다. 그러나 왕십리가 갖는 서민의 고향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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