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往十里)는 리(里)를 쓰지만, ‘마을’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거리’의 의미다. 무학대사와 도선선사의 일화가 어린 지역이다. 한양대가 들어선 이후, 오늘날은 젊은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비오는 왕십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비오는 날 취재를 갔다-
작성일 : 2025.07.16 03:24 수정일 : 2025.07.17 11:35 작성자 : kangsabin1 (kangsabin1@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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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의 왕십리 역사 |
왕십리(往十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김소월, 《신천지》(1923)
왕십리는 어쩌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거리일지 모른다. 그래서 소월 시인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라고 하였을까. 소월은 왕십리 이름의 ‘왕(갈 왕:往)’의 훈(의미)을 빌어 시구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비도 좋아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동감이다. 민족의 한과 민속을 노래한 시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애상(哀傷)이었을 터이다.
왕십리 자체가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는 애상의 거리다. 옛적 경복궁 지나 광희문을 나서면 현 금오동 지역에 형성된 ‘공동묘지’는 반드시 왕십리 부근에서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는 진혼(鎭魂)의 과정을 거쳐 갔다. 그래서 ‘신당동, 행당동’이라는 동 이름은 당시 많이 살았던 진혼 무당들의 거처였음을 알게 하는 흔적이다. 옛적의 왕십리는 오늘날 황학동, 신당동 등의 중구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왕십리는 또한 교통이 요지임은 분명하다. 오늘날에는 4개의 철도 노선이 지나는 쿼드러플 역세권(2호선, 5호선, 수인분당선, 경의중앙선)인데다가 곧 GTX 두 개 노선이 교차할 예정이다. 옛적에도 4대문을 벗어나서 동남쪽으로 갈 적에는 왕십리를 거쳐 뚝섬이나 광나루(광진)를 거쳐 여주 충주 등으로 나가는 길목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근세 조선에서는 군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을지로 5-6가 부근에 훈련원, 오른쪽 마장동 부근에 군마 목장(그래서 지금도 마장동이 있음)이 있었고, 왕십리에 군인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그후 일반 서민들도 관련 먹거리 장사 등으로 모여든 것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 군에 의해서 쑥대밭이 되는 아픔도 겪었다고 한다. 군마와 군인들의 본거지였다. 한 때 마장동에 도살장이 있었던 것이나, 뚝섬에 경마장이 있었던 것은 다 이러한 연유와 관계 깊다.
가도 가도 왕십리. 과거 도로나 지역이 정비되기 전에는 지대가 낮아서 비만 오면 침수되거나 질척거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비가 오면 회한에 찬 서민들이 비와 동시에 모여 들어 잔을 기울이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왕십리 밤거리에 비가 내리면 눈물을 삼키든, 옛 사랑을 마시든 술을 찾는 빈객들이 많은가 보다. ‘59년 왕십리’ 는 그러한 추억의 노래가 아닐는지....
참고로 ‘59년 왕십리’ 노래 제목은 59년대의 시대를 노래한 것이 아니고, 노래 부르는 가수 김흥국과 리메이크 작사·작곡가 이혜민이 59년 생이기 때문에 붙은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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