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남경 행궁터를 시작으로 근세조선의 권력 중심지이고 일제 강점기 이후 천재 문인, 화가들의 산실. 본 지에서는 문화탐방 1호 취재지로 서촌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사람, 먹거리, 역사 등 몇 가지 방향에서 탐방하여 싣는다-
작성일 : 2025.06.28 03:37 수정일 : 2025.07.10 11:48 작성자 : kangsabin 1 (kangsabin1@newssi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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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먹자거리 모습 |
서촌은 근세, 일제 강점기의 문인 천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운대로 통칭되는 백사 이항복의 집과 권율 장군의 집터, 정철 집터, 장동김씨(신 안동김씨)의 시조인 김상헌의 집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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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복의 집터(필운대), 국가유산청 제공 |
백사 또는 필운 이항복 선생(현재 필운대는 그의 호에서 유래함)은 어려서부터 재치와 기지가 뛰어난 천재였다고 알려져 있다. 장난끼도 많아서 여러 사람들을 놀리고 장난치는 와중에도 항상 재치 있는 언변이나 지혜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소재로 한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도 전해진다. 오성은 이항복의 봉호인 '오성 부원군'에서 유래한다. 오성과 한음(이덕형)의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담을 연하여 이웃으로 지내던 권철 대감댁(권율 장군 부친)과 감나무 일화는 유명하며, 그 일화 속에서 권철 대감이 이항복의 기지를 높게 쳤고, 이후 이항복이 권율 장군의 사위가 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치와 기지가 뛰어난 이항복 대감도 전쟁의 아픔과 유배의 고통은 비껴가지 못한 듯하다. 이항복이 중요한 벼술을 하던 시기가 선조와 광해군 때이다 보니 당파 싸움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결국 광해군에 의해 북청으로 유배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시조를 남겼다.
철령(鐵嶺) 높은 봉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고신(孤臣) 원루(寃淚)를 비삼아 띄여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엇더하리
이항복은 유배길을 떠나면서 자신이 죽기 전에 돌아오기 힘들 것을 알고 미리 상을 치를 준비를 하고 떠났다고 한다. 결국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불운을 겪었다. 호방한 성품과 인정 많은 행동으로 사랑받던 오성 대감의 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으나, 후세의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의 재담 이야기를 듣고 꿈을 키웠다.
북악산 아래 집터를 잡은 김상헌은 원래 안동 김씨였다. 그의 재직 시에는 광해군과 인조, 효종 때 당파 싸움이 심하였다. 특히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로서 주전론(척화론)을 주장하고 청과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삼전도 굴욕'을 당한 후에 청에 압송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소현세자,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함께였다. 그 때 청에 압송되면서 지은 시조가 <병와가곡집>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하지만 김상헌은 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효종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인물이다. 더구나 그의 형 아들인 ‘김광찬’을 양 아들로 삼은 이후, 이들은 서촌 장동에 머물며 조선 후기 세도가인 ‘장동 김씨’로 불렸고 김조순, 하옥 대감이라불린 김좌근 등 대대로 15명의 정승, 35명의 판서를 배출하며 권세를 누렸다.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고서야 이들의 권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역사는 말하고 있다.
송강 정철도 빼놓을 수 없다. 정철의 집터는 김상헌의 집터보다 청운동 쪽으로 더 올라가 있다. 시기적으로도 김상헌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주 활동 시기도 선조때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한 때, 서인의 우두머리로 동인과 대척을 이루면서 많은 정적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문학적으로 끼친 영향은 무궁 무진하다.
가사 문학의 대표자이면서, 문학사에 빛나는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과 같은 주옥 같은 명 가사 문학을 만들어 냈다. 문장이 유려하고 호방하여 서포 김만중은 관동별곡을 '동방의 이소'라고 할 정도였다. 관동별곡은 국어나 문학 시험의 필독 내용이자 암기사항이었다. 이 외에도 훈민가 등을 지어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애썼다고 알려져 있는 데, 훈민가 15 수 중 마지막 내용의 시조는 다음의 것이다.
이고진 저늙은이 짐을 벗어 날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 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서촌에서 시조와 가사로 옛 정취를 만끽해 보는 것도 권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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