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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자 공화당(오른쪽)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당 의원들. ⓒ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4일(이하 현지시간) 상·하원 의회 합동연설을 가졌다. 우리 언론은 미국제품에 대한 한국의 관세와 대규모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에 한국이 수조 달러의 투자를 원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언론은 트럼프의 연설 첫 마디인 "미국이 돌와왔다"라는 표현을 "미국이 돌았다"라고 수정한 만평을 게재하거나, 대통령 연설에 대한 공화당과 민주당의원들의 태도를 빗대어 "환호·야유·퇴장…美 극단분열 확인한 트럼프의 100분 의회연설"이란 제하의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사의 편집 방향성(editorial stance)이 있으므로 이해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한가한 논평이나 하고 있을 때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자국보다 2배의 관세를 부과하는 중국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알래스카 LNG 가스관 프로젝트에 수조 달러의 투자를 희망하고 있다"라고도 언급했다.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그의 프리즘을 분석하면서 이미 한국을 대미무역에서 많은 흑자를 내고 있는 '위험지대'로 분류했었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혹시 우리는 예외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근 미국을 방문하여 조선ㆍ에너지 등을 관세와 엮어 논의하는 한ㆍ미 산업ㆍ통상ㆍ자원 실무 협의체를 구성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알래스카 가스개발사업에 관한 사항도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진의(眞意)에 대한 국내의 해석이 분분하다.
"한미 간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어 대부분의 품목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라는 식의 반응은 본질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더 포괄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오바마 2기 행정부부터 미국은 줄곧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 집중해 오고 있다. 물론, 구체적인 방식에 있어서는 행정부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방향성은 명확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의 맥락에서 일관성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중국을 봉쇄(containment)하기 위한 주춧돌(corner stone)을 크게 놓아가는 맥락이고, 둘째는 그러한 주춧돌을 놓는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결부시키는 맥락이다. 두번째 맥락이 트럼프의 특징적 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행정부들이 점잖은 정원사로서 정글을 관리했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저돌적인 야수로서 정글을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밀착을 중국 견제를 위한 가장 확실한 포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경제적 관점에서는 러시아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자원들에도 욕심을 내고 있는 듯 하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는 주요 광물 중 70% 정도가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밀착은 자연스레 유럽과의 관계 재설정을 필요로 할 것이며, 유럽 방위를 위한 미국의 막대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문제도 이러한 맥락 속에 묻혀 있다. 이미 미군이 유럽사령부를 재편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를 감지한 폰데어라이엔(Ursula Gertrud 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유럽의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8천억 유로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두번째 정상회담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가진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린란드나 파나마 운하와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들도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그의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에게 한국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중국 봉쇄를 위한 블록의 최전선이면서 동시에 약한 고리로 인식될 수 있다. 한국 내에 친중ㆍ반일 성향의 정치세력이 적지 않다는 경험적 인식 때문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는 한국을 꽤 잘사는 경제대국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과 함께 한국을 서태평양지역에서 견고한 주춧돌로 세우면서 경제적으로나 자신의 취약성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한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2024년 기준 미국의 전체 교역액은 약 4조 2천억 달러였으며, 한국은 미국 전체 교역에서 약 3.5%의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 해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수출의 호조에 힘입어 약 557억 달러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약 9,184억 달러였음을 감안한다면 전체의 약 6.1%를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무역수지에 있어 불균형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국제교역에 있어 예외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간 체결된 자유무역협정을 모를 리도 없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본질적 의도는 관세 자체가 아닌 미국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 확대, 주한미군 유지와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드는 비용의 한국 부담률 확대로 좁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관세의 무기화(stick)가 '블록의 약한 고리로서 한국'이라는 그의 우려를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있음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당근(carrot)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2월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 이후 양측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이니 당연한 합의로 볼 수 있다. 한편, 2월 15일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미국 국무장관,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무대신은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3국 장관들은 회담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일 3국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제재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강력한 대북압박과 함께 북한의 제재 위반·회피 활동에 대해 단호히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설에서도 우려했던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패싱하고 김정은과 모종의 담판을 할 수 있다거나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이라는 한국인의 우려와는 거리가 있는 미국의 외교적 활동들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반도 안보지형 구축을 위한 현실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 혈맹이니 전략적 동맹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당시의 국가이익을 포장하는 수사(rethoric)들이다. 유효기간에 차이는 있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일시적인 관념에 해당한다. 그래서 본질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안보에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핵능력을 포함한 북한의 정치·군사적 위협과 중국의 공세적이고 교묘한 팽창정책의 지정·지경학적 위협이다. 다행히 두 가지 모두 미국, 일본의 안보적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비근한 예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중국과의 경쟁에 필수적인 해군력 강화에 한국의 역량이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반도 안보지형의 큰 그림은 한·일 협력이라는 작은 고리와 한·미·일 협력이라는 큰 고리로 강화되어야 한다. 매우 어지러워 보이는 국제정세이지만 역학관계의 본질상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히 트럼프 2.0시대에는 냉철하고 올바른 국가적 리더십이 절실한데, 우리는 정작 국내정치의 늪에 빠져 이러한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