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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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적 역동성 경제대국 1 - 다양성이 힘이다.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자(2).

올바른 리더십은 왜곡된 의사결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리더십이다. 의사결정의 왜곡을 가져오는 주요 요인은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에 있다. 집단적 사고를 유발하는 리더십은 잘못된 리더십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이론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작성일 : 2025.02.18 10:12 수정일 : 2025.02.18 02:51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다양성이 힘이다.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에서 벗어나자.

 

정치인, 공무원, 기업 CEO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리더십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 교과서에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리더십 일반론에 대해서 식상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리더십을 의사결정측면에서 다룰 것을 제안한다.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옳은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도록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의사결정과 리더십의 관계 모형을 통해서 리더십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올바른 리더십은 왜곡된 의사결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리더십이다. 의사결정의 왜곡을 가져오는 주요 요인은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에 있다. 집단적 사고를 유발하는 리더십은 잘못된 리더십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보아도 그렇고 이론적으로 볼 때도 그렇다.

집단적 사고는 구성원들 간에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 일어난다. 그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에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다른 대안들을 압도한다. 그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구성원들의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집단적 사고다. 주어진 정보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이나 균형감 있는 논의를 막음으로써 결국 의사결정이 잘못되어 일을 그르치게 된다.

따라서 오류가 없는 의사결정으로 이끄는 리더십은, 바로 집단적 사고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집단적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와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왜곡된 리더십을 바로 잡고, 바람직한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다.

 

먼저 과학적 회의주의 관점에서 리더십을 살펴보자.

회의주의(skepticism)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다른 관점이나 다른 가설은 있는가? 그것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와 같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철학의 한 유파인 회의주의와 유사한 면도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지적운동의 한 분파를 일컫는 용어다. ‘과학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보다 뜻이 명확해 질 것이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보이거나 우리를 미혹시키는 현상을 조사하고 검증하거나 반증하는 태도를 말한다정리하면,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는 실증 가능성과 재현 가능성을 기준으로 어떤 주장이나 현상의 진실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비판적인 태도를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집단적 사고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리더십을 바로잡는 방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유대감(cohesion)이 강한 조직일수록 집단적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클까?

예일 대학의 Irving Janis는 케네디 행정부가 쿠바의 피그스만(Bay of Pigs)을 침공하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주요 원인을 집단적 사고라고 지적한다. 그는 의사결정자들이 유대감이 강한 집단에 속해 있을 때 집단적 사고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런 조직에서는 대개 만장일치로 결정하고자 하는 열망이, 현실적으로 합당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동기보다 훨씬 더 커서 대개 집단적 사고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런 경향이 케네디 행정부의 구성원들에게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끼리의 분위기를 망치는 소리를 한다고 할까봐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참모였던 Bill Moyers의 증언을 들어보자.

국가 안보 문제 담당자들은 서로 지나칠 정도로 가까워졌고, 사적으로도 서로 너무 친졌다. 그들은 국가의 대사를 다룰 때 마치 남성 친목회에서 일처리 하듯 했다. ... 서로 너무 가까워지면 토론에 비유하자면,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을 끝까지 몰아붙이기를 꺼리고, 누가 의견을 표명해도 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으며,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도 핵심은 문제 삼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보다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집단적 사고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이 자기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기하고 반대의견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케네디의 정책 참모들이 그렇게 유대감이 강하지 않았다면, 집단적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피그스 만의 침공을 반대하는 소수 의견이 존중되었을 것이고,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실책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집단적 사고가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문제는 그 조직의 문화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어와 실력주의가 살아 숨 쉬는 조직에서는 집단적 사고가 일어나기 어렵다. 어떤 조직이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도록 격려하고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는, 집단적 사고가 발붙일 수 없다는 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집단적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안들은 무엇인가?

집단적 사고는 의사결정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그동안 이를 막는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먼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처음 시작된 것은 1587년이다. 당시 교황 Sixtus 5세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성인(聖人)에 오를 후보를 심사할 때에 지켜야 할 새로운 규칙을 마련하였다. 로마 교황청이 카톨릭 성직자를 성인 반열에 올리는 것을 심사할 때에 악마의 대변인을 선임하도록 하였다. 그로 하여금 각 후보들의 성품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후보들의 업적과 기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도록 하였다. 이 규칙은 그 후 50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두 번째 사례는 자신을 반대하고 비난했던 사람을 내각에 기용했던 링컨 대통령의 인재 기용방식이다. 그는 진정한 반대자를 통해서 집단적 사고를 막았다. 링컨 대통령이 실천했던 내각 기용방식은 진정한 반대자를 내각에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한 차원 높은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

세 번째로 우리도 집단사고를 예방하는 좋은 역사적 사례를 갖고 있다. 바로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견광지(獧狂止)’이다. 신하들과 찬반이 갈리는 문제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하여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대개 리더들은 자신의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항상 문제가 없는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융통성 없는 박스형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머리에 박스를 쓰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박스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리더 밑에서 근무하는 구성원들은 문제를 숨기게 된다.

요즘 창조적 파괴를 주장하는 것이 대세이다.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창의성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창발적인 사람들은 없던 문제도 만들어 낸다. 창조적 조직에서는 문제를 드러내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그 조직의 리더는 구성원들이 제기하는 창발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한다.

이런 창의적인 조직 운영 사례가 일찍이 조선 시대에 있었다. 바로 세종대왕의 박스형 사고 탈출법이다. 역사상 세종대왕이 재임하던 시기만큼 반대를 하는 신하들이 많았던 적도 없었다. 사소한 문제부터 커다란 국사에 이르기까지 온통 반대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종은 그런 반대에 대해 관용적이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였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고약한 사람이란 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종대왕 재임 중에 고약해(高若海)라는 신하가 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후대에 반기를 드는 사람을 가리켜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칭하게 된다. 그래도 세종은 고약해를 대사헌이라는 자리에까지 앉혔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반대가 주는 다양성의 의미를 깊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세종대왕은 어전회의를 할 때면 항상 건설적 토론을 조장하였다. 그 때에 사용한 방법이 바로 견광지였다. ()은 하지말자는 뜻이다. 반대 의견이다. 이에 대해 광()은 해보자는 뜻이다. 찬성 의견이다. ()는 잠깐 쉬어 다시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견광지는 반대 의견과 찬성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를 절충하는 방식이다.

회의에서 고위 관료들은 대체로 아니 되옵니다를 외칠 때, 집현전 학자들은 해 봅시다라고 우기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세종은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안 된다는 이유와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 보고 이 두 가지 의견을 통합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Hofstede의 권력거리 지수(power distance index)가 낮은 조직은 집단적 사고가 줄어든다.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자기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권력거리’ 로 나타낼 수 있다. 권력거리는 특정한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낸다.

Hofstede는 권력거리 지수를 측정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직원들이 관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드러내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가?

그리고 조직이나 집단 내 약자가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추가 질문을 하였다. 나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존중받고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가? 권력층이 특권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등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측정되는 권력거리는 쉽게 말하면 힘 없는 사람들이 권력의 불평등한 분포를 수용하는 정도’ 로 정의할 수 있다. 권력의 불평등을 수용하는 정도가 낮을수록 권력거리가 작은 것이다. 평등한 나라에서는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약하고, 권력거리가 큰 나라는 그 반대이다. 대개 권력거리가 큰 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권력거리와 집단적 사고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집단적 사고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조직이든 국가이든 권력거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문화를 형성해가는 수밖에 없다.

권력거리가 작은 나라에서는 불평등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여 권력, ,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언로를 통제당하거나 발언기회를 차단당하는 일은 부당하게 여겨질 것이며, 어떤 이유로도 그런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권력거리가 큰 나라로 여겨졌으나, 최근 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핵가족화의 영향 등으로 권력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권력자들이 자기가 가진 권력을 거들먹거리면서 사용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권력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맺음 말

과거 개발시대에는 리더의 카리스마가 중요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시장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해져서 하나를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기 십상이다.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마디로 집단지성’ 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누구도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폐쇄적인 집단적 사고는 이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다른 생각과 비판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집단적 사고는 집단 편견’ 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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