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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3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시민들이 국기 등을 흔들며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환영하고 있다. ⓒ 동아일보 |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시리아 남부에서의 군사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이스라엘-헤즈볼라-이란을 중심축으로 했던 중동의 이슈가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은 아마도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면서 중동지역에 새로운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으로 보인다. 2011년 3월15일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2024년 12월8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세습 독재자 아사드가 러시아로 망명하면서 끝이 났다. 이러한 급작스런 상황의 배후에는 튀르키예의 군사적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 동안 시리아는 중동의 린치핀(Linchpin)으로 불리며 주변 여러 나라의 세력다툼이 있었던 곳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북부와 시리아의 동부를 점령하여 국가를 자처했던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의 재건을 차단하기 위해 시리아 민주군(SDF)을 지원해 왔다. SDF의 주적은 ISIL이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에 타르투스 해군 기지와 후메이밈 공군 기지를 운영해 왔다. 특히, 타르투스 해군기지는 지중해에 있는 러시아 해군의 유일한 수리 및 보급 시설이다. 영향력을 지중해로까지 확장하려는 러시아 해군에게 이 기지가 없다면 연료공급을 위해 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야만 한다.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주된 배경이다.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의 공고한 유지는 이란의 정체성과 외형적으로 연결된다. 이란은 종교적 정체성에 기반한 혁명정신의 수출이라는 대의명분을 통해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무장단체를 배후에서 지원해 왔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벨트는 이란 남쪽의 적대세력으로부터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종교적 대의명분의 이면에 안보문제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란이 공들여 왔던 시아파 벨트에 균열이 생기고, 전위대들이 거의 와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튀르키예는 조금 더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튀르키예에 정착하고 있는 3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국내정치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해 왔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운동이다. 시리아 북동부에 근거지를 둔 SDF의 배후에 쿠르디스탄노동자당(PKK)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PKK는 튀르키예에서 활동중인 쿠르드족의 분리주의 무장조직으로 극좌,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튀르키예 인구의 2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운동은 심각한 내부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튀르키예가 HTS를 지원하여 아사드정권을 붕괴시킴으로써 난민문제와 SDF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했다는 분석에 무게를 실어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튀르키예가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고 분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내부적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것이란 전망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이스라엘-하마스ㆍ헤즈볼라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작용했다. 전쟁으로 인해 시리아에서의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란과 러시아의 공백을 튀르키예가 민첩하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선제기습을 허용하고 국제적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가자지구에서의 하마스 위협, 북부 국경에서의 헤즈볼라 위협을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자국의 영토가 직접 공격받을 가능성을 축소시켰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해군 및 공군기지를 철수하였고 이란은 시아파 벨트에서 전위조직을 상실하였다. 결국, 최근 일련의 중동정세 속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한 나라는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이 된 셈이다.
앞으로 시리아의 운명은 더 혼란스러워질 전망이다. 당장은 세습독재를 이어오던 아사드 정권이 물러나 국민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른 반군세력들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편, 시리아에서 또다시 발현할 수 있는 국제 테러리즘은 시리아 전체를 또하나의 전장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국토, 중동의 린치핀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시리아는 앞으로도 각자의 안보를 담보하기 위한 주변국들의 각축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국민의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특성을 전략적 강점으로 전환시킬 사명감 있는 국가 리더십의 출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들 중동의 문제를 종교나 문화의 갈등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가 갈등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여러 중동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고, 그 정체성의 실체인 국가를 보전하기 위한 과정에서 반목과 갈등이 증폭되어 온 것이다.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유대인과 팔레스티나 사람들은 친근한 이웃이었다. 이란 혁명이 있기 전까지 이란과 이스라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최근의 중동사태를 통해 우리는, 국가의 본질과 국가들의 행태를 바라보는 현실적 시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