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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덮인 철책을 순찰 중인 GOP 장병들. 어머니는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눈이 내리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겨울의 현실에는 언제나 눈이 있다. 국가 간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 국방부 제공] |
12월 14일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이다. 그럼에도 기상 이슈가 국민의 뇌리를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 이틀 전에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국회 표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차 탄핵소추안은 지난 4일에 발의된 1차 소추안에 비해 양적으로 상당히 늘어났다. 본문의 분량만 30%가 넘게 늘어났고,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 목록은 9배가 늘어났다. 이번 계엄사태 이후 조사와 수사를 통해 여러 정황들이 밝혀졌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어찌됐든, 이번 사태는 총리의 말대로 법률적 절차와 국민적 여망에 따라 정리가 되겠지만, 커다란 후유증과 우리 사회전반에 많은 과제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대통령에 대한 1, 2차 탄핵소추안을 보면 여론이 주목하지 않은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1차 탄핵안의 결론부분에 "소위 가치외교라는 미명 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 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직위에 임명하는 등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의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의무를 내팽개쳐 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차 탄핵안에는 이런 내용이 아예 빠져 있다. 소추안에 담아야 할 내용이 차고 넘쳐서 이 정도 표현은 제외시킨 것인지, 스스로가 문제점을 인식하여 제외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소추안이라는 파급력이 큰 문건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 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헌법 제65조는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도 포함된다. 한편, 제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러한 책무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헌법 제76조와 77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와 계엄에 관한 사항이 반영되어 있다. 앞으로 치열한 법리다툼이 진행되겠지만, 윤석열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요지는 이번 계엄발령이 헌법 제77조와 계엄법 등을 위반했다는 지극히 법리적인 차원에 한정되었어야 한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후 추진해 왔던 안보와 외교정책의 방향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이를 탄핵소추안에 포함한 행위는 매우 치졸하고 상식에 어긋난다.
1차 탄핵소추안에 포함된 '지정학적 균형'이란 용어는 국제정치학적으로 "한 국가 또는 지역이 특정 대립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고, 국제적인 위치를 균형 있게 조정"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전략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고차원의 문제로, 법률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사안이다. 아무리 그 의미를 확대해석하더라도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려 했던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 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논리를 계속 주장하려면, 지난 정부가 미국과 일본을 적대시하면서 북한과 중국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고집했던 정책의 방향이 '지정학적 균형'을 추구했다는 논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껏해야 '등거리'라는 개념을 얘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개념이 무정부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순진무구한 발상이었는지를 우리는 이미 19세기말의 역사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바가 있다.
흔히들 신냉전이라고 하는 현재의 국제구조는 더이상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아니다. 간략화하자면,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Eurasia dictatorship(전체주의, 권위주의체제)과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다. 국제구조에 관한 이러한 정의가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는 없으나, 적어도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헌법적 가치에 기반한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그 구조의 최전선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 상황에서 지정학적 균형을 위해서는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체제를 굳건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서적ㆍ이념적ㆍ경제적 차원을 떠나 대한민국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외교안보정책이다. 하물며, 이러한 정책 방향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대통령 탄핵소추의 이유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최초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던 범야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스스로 삭제했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동기는 상당수 우리 정치엘리트들의 국가안보와 관련한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국제사회의 속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만큼은 견해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은 바뀌지 않겠지만, 지정학적 가치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지정학적 특성과 가치를 혼동하는 외교안보정책은 국가의 안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반복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전략문화가 갖고 있는 취약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