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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법 실증주의(實證主義)시리즈 ②, 사법(司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 시대의 아픔

-지나친 법 의존 사회, 정치와 사회의 법 남용, 사법의 정치화는?-

작성일 : 2024.12.02 02:34 수정일 : 2024.12.11 09:13 작성자 : 에디터 강사빈 (kangsabin1@newssisun.com)

사라지는 법 실증주의는 정치 사회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만든 산물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빈부의 양극화만이 아니라 세대의 양극화, 지역의 양극화, 소비의 양극화. 이제 양극화는 오히려 유행어처럼 익숙하다. 이해하는 수준도 달라서 양극화의 양극화마저 진행되는 작금의 상황이다. 문제는 관념의 양극화다. 그리고 그것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서로 자기 것만 맞다고 어깃장을 놓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생각은 악마화하고 있다. 사실(fact)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에 동의할 주장만이 옳다는 것이다. 일찍이 소피스트들이 유행하던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문제를 의견(doxa)’이라고 정의하면서 경계하기를 설파한 바 있다. 자기 자신의 의견은 어느 것이든 가능하나 그것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견해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판단의 혼란을 적절히 악용하는 사람들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으니누가 옳은지 다수에게 물어보자고 하던 시기도 그래서 나왔다. 민주정치가 아니라 중우정치(衆愚政治) 시대다. 지금의 우리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수단을 찾아냈으니, 그것이 사법적 판단이라는 도피처다. 사회 모든 문제를 종국에는 재판으로 가져간다. 개인 간의 첨예한 이해의 충돌이나 국가적 형벌권의 문제를 사법에 의존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라고 하니 그것을 법에 의존하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문제는 사회의 모든 사태나 정책에서부터 감정적인 것, 내면의 사적인 것까지 모든 문제를 사법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적 결단은 필요 없는 사회다. 개인 간, 집단 간 양보와 타협이나 협상은 없다. 그럴 바엔 재판부에게 정책을 구상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라고 하면 되지 행정부와 입법부는 무슨 존재가치가 있을 것이며, 개인적 유대 관계 형성은 왜 필요한가 하고 묻는 자조 섞인 비아냥마저 나온다. 시험 문제의 타당성도 소송으로 간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시험 출제에서 오류가 있다고 그것을 법원이 판단하여 결정하게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저 자기 주장에 빠진 헛소리로 치부된다. 환경 문제도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고, 정당의 내부 문제도 수사기관의 힘을 빌어 처리하고자 한다. 객관적인 판단을 얻어낸다는 의미겠지만, 환경의 가치와 실효적 정책 대응을 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인가. 정당의 선택 과정에서 동원된 다양한 변수들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문제 해결에 기여하였는가에 대해서 수사기관이 어떻게 판단한다는 것인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감정 문제나 내밀한 사적 부분마저 국가의 사법으로 해결하려는 지나친 시대다. 인간은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그 공동체는 다양한 독립된 개인이 존재하면서 다른 한편 상호간의 공유된 감정과 필요에 의해서 작동된다. 개인 상호 간에 존재하는 교류 과정에서 한쪽의 개인이 기분 나쁘고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면 법이 처벌하고 있다. 가족 간의 내밀한 감정이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사법에 의거하고 있다. 이제는 가장 기본적 공동체인 가족 간의 문제도, 개인의 감정도 국가 사법 체계에 물어서 해결하는 상황이다. 악용으로 인한 피해의 문제는 개인의 몫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법 만능주의 흐름은 사법 체계의 기본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왕조시대의 권위적인 시대에도 개인 간 사법의 근간은 그것이 외형적 행위로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것이 계획적이고 악의적일 때, 형벌권이 작동하거나 사법의 판단이 작용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켜야 할 사법의 기본 가치,  각 개인들 끼리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그후 법적 책임을 묻는 정신, 일상적인 다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잘못된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수사기관이나 재판관은 전지전능이 아니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필요가 철저한 법 정신에 근거하던 시대는 사라졌다. 논리와 이론이 없이, 표가 되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요구한다고 만들어지는 입법의 작태다. 그러니 고소 고발이 난무한다. 정신적 고통, 사회 경제적 낭비와 비효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이런 상황을 자초한 적은 없는가? 사법부도 내부의 행정적 이유가 있고, 예산의 확보 등 그에 맞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에서 협의의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관 이익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한 판단이 있다면, 증거와 법리에 따른 법적 양심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시민단체의 위협에 굴복한 판단이나 법관 자신의 개인적 안위를 위한 판단, 재판 거래가 있다면 이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사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판단한 적은 없는지, 그에 앞서 자신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스스로 자제할 필요는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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