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재민의 정치사상과 자유 시장경제 원리는 시민계급이 기회를 넓혀 나가는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노동조합의 합법화도 노동자 계급에게 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인류역사가 기회의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진보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이어서 「기회균점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기회균점주의로 가야 한다.
작성일 : 2024.11.26 10:22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정치경제 기회의 불평등을 개선했던 역사속의 위대한 노력들.
세상살이에는 운이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기회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변화무쌍함 속에서 부단하게 노력하여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년 11월 중순이 되면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치른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왜 이렇게 시험을 보아야 하는가?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큰 꿈을 갖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시험 성적이 높게 나온다. 그래서 많은 대학으로부터 입학의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다. 그 학생은 주어진 기회들 중에서 가장 좋은 조건의 대학을 선택한다.
이처럼 인생살이는 기회를 얻기 위해 준비하고, 주어진 기회 중에서 최선의 기회를 선택하는 연속선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성공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회’와 ‘선택’이다. 역사는 주어진 기회를 선택하는 연속선이다.
지구촌을 이끌어 갈 선진국민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나라밖의 세계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어진 기회를 먼저 생각하고 그 기회 중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면서도 대의명분이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보는 통찰의 틀로서 기회는 매우 의미 있는 기준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기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현재 통용되는 ‘기회균등 원칙’의 한계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 대안으로 ‘기회균점주의’를 추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성공 가능성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불평등이 해소된다. 이런 논의에 기초하여 한국의 미래를 풀어나가기 위한 ‘기회균점주의’를 제시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정치 경제의 기회 불평등을 개선했던 역사속의 위대한 노력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유럽대륙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한다. 이때부터 유럽은 정치적으로 봉건제도, 정신적으로는 기독교라는 두 축에 의해서 이끌어지게 된다. 이러한 신 중심의 암흑기는 14∼15세기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날 때까지 1000여 년간 지속된다. 천 년간의 암흑기가 전개된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살아서는 신의 교리에 따르고, 죽어서는 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 삶의 최고 목표였을 것이다.
그런데 암흑기가 시작된 후 500년 정도 지난 11세기 말부터 200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명분상 이슬람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실제로 유럽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만든다.
십자군으로 차출되어 중동, 이집트 등 이슬람 지역에 참전했던 유럽인들은, 고대에 자기 조상들이 전해주었던 인간중심의 그리스·로마 철학과 과학 지식을 그 적지에서 다시 접하게 된다. 다시 말해, 중세의 암흑기를 밝혀줄 횃불을 적의 땅 이슬람 지역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십자군 원정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데, 이로 인해 대도시와 항구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흐름에 따라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점차 도시로 모여들게 되면서 경제의 중심이 농촌에서 도시로 바뀌게 된다. 새롭게 시민계급이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시민계급은, 중세의 농민들과는 달리 ‘기회의 부족’에서 오는 목마름이 무엇보다 컸었다. 당시 시민계급, 즉 부르주아들은 상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경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었지만, 정치적으로 소외된 신분에 머물러야 했다. 성직자, 귀족 다음의 제3신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에게는 공직에 진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회의 불평등이 그들을 여전히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민계급은 기회를 얻기 위한 저항을 시작한다. 그들은 이러한 ‘기회의 불평등’ 에 저항하여 정치적으로 인간의 권리와 기회균등을 외치기 시작한다. 절대왕정에 저항하여 시민의 기본권과 재산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시민계급은 ‘우리에게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달라. 우리의 재산은 우리 노동의 산물이며 정당한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선언한다. 이렇듯 시민계급은 정치는 물론 경제적인 자유와 기회를 확대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주장들이 프랑스 혁명 등 시민혁명을 통해서 표출되고 ‘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서 정착하게 된다. 자유는 구속이나 속박이 없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유주의는 상공업의 발달과 시민계급의 출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꽃피게 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시민계급은 기회부족에 저항하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자유주의를 확립한다. 그 결과 자유주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로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된다. 위의 주장은 황광우 선생이 강조했던 내용들이다.
오늘날까지 역사의 흐름에서 가장 각광을 받는 정치이념은 ‘자유 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이데올로기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이념과 접목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자유주의와 결합할 수 있고, 심지어 전체주의와도 접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라고 자처하고, 과거의 소련과 지금의 중국도 자신들을 민주주의라고 행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헌법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자유, 평등의 토대위에서 합의된 헌법적 이념으로 보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와 결합하기 이전의 민주주의는 어떠하였는가? 민주주의는 그 역사가 오래된 이념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2,5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는 17세기에서 19세기 동안 우여곡절을 거쳐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하나의 정치이념으로 정착되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자유주의가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은 시민계급의 출현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대의 지배체제는 절대군주정이었다. 절대군주들은 왕권신수설(the theory of the Divine Right of Kings)에 근거하여 통치를 하였다. 왕권신수설에 따르면, 군주는 지상에 유일한 신의 대리인이며 왕권은 신이 부여한 것이므로 왕은 절대적이고 오로지 신에게만 책임을 진다. 그래서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왕에게 절대 복종해야 할 의무만이 부여되었다.
이런 절대군주정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시민계급이었다. 시민계급을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자유주의 사상의 근간인 ‘사회계약설’이 제기된다. 로크, 루소 등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왕권은 물론 모든 권력은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합의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시민계급은 이런 정치사상을 명분으로 삼아 시민혁명을 일으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주권의 근대국가를 수립하게 된다. 근대국가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여 국민들이 선출한 의회에서 법을 만들면, 행정부와 사법부는 법에 따라 통치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이제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에 발맞추어서 ‘자유 시장경제’의 원리는 어떻게 등장하였는지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유 시장경제 이론은 경제학의 아버지인 Adam Smith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1776년에 발간한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자유 시장경제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주장한다. 모든 가치의 원천, 즉 국부의 원천을 노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상품이 가치를 갖게 되는 이유를 인간의 노동이 투입되었다는 데서 찾는다. 이 주장은 시민계급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노동을 통해서 얻은 재산은 그 사람의 재산이고, 어느 누구도 이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Smith는 국부론에서 Laissez-faire를 주장한다. 영어로 Let it be와 같은 뜻이다. ‘제발 내버려 두어라. 사람들에게 욕심껏 살라고 해라. 그러면 사회가 잘 돌아갈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개인의 이기심과 경쟁이 사회를 조화롭게 발전시킨다.’는 당시에는 매우 도발적인 내용을 내세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유럽의 중상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중상주의는 국가가 개입하여 금과 은을 축적하기 위해 수출을 증대시켜야 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각종 규제와 제약을 가하였다. 그 결과로 소수의 상공인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모순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기회를 봉쇄당한 시민계급은 중상주의 체제에 저항하게 된다.
이런 중상주의 시대에 반기를 든 Smith는 자유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하면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변화가 생기면 경쟁원리에 따라 생산자나 소비자의 행동이 함께 변하고, 이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다는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였다.
Smith의 자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은, 계약자유 원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사유재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18세기에 들어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급기야 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사유재산을 보장받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부르주아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근대가 시작된다.
정치경제학적으로 정리하면, ‘자유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 속에서 대두되었고, 서로를 보완하고 지원해주는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민계급들은 자기들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를 적극 옹호하고 활용하였다.
세월이 흘러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해 질 즈음에 또 한 번의 역사적 소용돌이가 일어나게 된다. 자유주의가 경제적으로 시민계층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가지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모순은 부르주아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면서 정치적으로 기회를 봉쇄하는데서 비롯된다. 이에 노동자 계급들은 ‘기회’를 놓고 부르주아 계급과 싸움을 벌이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했던 초심을 잃고 오로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부르주아를 향해 노동자 계급도 기회를 달라고 저항하게 되기에 이른다.
이런 저항을 통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합법적인 제도로 인정받고,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여 요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보통선거’ 제도를 확보하게 된다.
최근 들어 역사의 수레바퀴는 또 다른 모순을 낳고 있다. 기회가 모두에게 균등하게 보장된다고 믿는 현대사회에서 또 하나의 차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분화로 인해 생겨난 차별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노동계급도 대기업의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귀족 노동자’와 비정규직 등 ‘하위 노동자’로 분화되었다. 기득권을 거머쥔 귀족 노동조합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위한 각종 지원정책에 반기를 드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르바이트, 계약 사원 등 비정규직에게 한 푼도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횡포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노·노 간의 기회공유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사의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을 기회의 확대라는 잣대로 설명해 보았다. 주권재민의 정치사상과 자유 시장경제 원리는 시민계급이 기회를 넓혀 나가는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노동조합의 합법화도 노동자 계급에게 기회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인류역사가 기회의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가운데 계속적으로 진보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이어서 「기회균점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기회균점주의로 가야 한다.<끝>
이번 주의 시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