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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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법 실증주의(實證主義)시리즈 ① 사법의 정치화로 인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 것을... 」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지체된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살려야 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시의 적절하게 빨리 빨리 결정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작성일 : 2024.11.17 09:49 수정일 : 2024.12.02 02:30 작성자 : 에디터 박세미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로 인해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닌 것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인도(India)에 정통한 학자에 따르면, ‘인도에서 토지소유 관련 소송이 벌어져 대법원까지 가서 확정판결을 받는데 30년이 걸린다.’ 고 한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정도로 지연된다면 인도어의 사전에 있는 정의는 그저 말일 뿐이고 실제로 현실에서는 정의가 통용되지 않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인도의 사법 현실과 법치주의를 비웃겠지만 우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숙의적 공론 과정을 통해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정치적 사안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를 사법부에 맡겨 재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은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편, 사법부에서도 우려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법관들의 권리이자 의무가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우리 헌법 103조는 법관이 '외부 간섭 없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지 않는다면, 소위 외부의 압력을 받아 정치적으로 판결을 한다면 그 패악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처럼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적 판단에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가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사법적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변질시켜 정쟁화하는 사법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걱정들이 법학자와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위기에 놓일 지경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는 모두 다 문제가 크지만, 사법의 정치화가 훨씬 더 위험하다.

이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를 살펴보고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보자.

어떤 사안이나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참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를 판단하여야 할 경우가 있다고 하자. 정파에 따라서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눈의 밝기와 크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삶의 현장을 보이는 대로관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거나, 보아야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객관이 없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요, 선입견을 갖는 것이요, 고정관념에 갇혀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갖고 낮은 겸허한 자세로 보이는 대로세상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몇 가지 접근방법을 살펴보고 우리의 시각을 바로 세워야 한다.

먼저 접근방법 중 하나로 기능적·구조적 접근이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하거나 분석하면 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사회문제는 바람직한 상태와 현재 상태 간의 차이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가치(value)-갈등(conflict) 접근이다. 사회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본다. 사회문제들은 구성원들이 표출하는 가치판단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접근방법은 형성(construction)주의적 접근이다. 사회문제라는 것은 추정되고 있는 어떤 조건에 대해서 불만이나 주장을 만들어 나가는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활동가들이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거나, 어떤 집단이 상대편과 반대되는 프레임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프레이밍(framing)이라고 한다. 세상을 보는 의미의 해석 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프레이밍은 중요한 형성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기능적·구조적 시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런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은 진실(fact)을 밝히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 가치-갈등적인 접근과 형성주의적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가치-갈등적 접근 등은 우리의 인식을 한 방향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앞을 보는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눈을 멀리 미래를 향해서 보고, 현재를 관찰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뒤를 쳐다보고 과거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앞을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인데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머뭇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로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의 시력은 더 희미해질 것이다. 우리의 눈은 앞을 똑바로 보고 미래를 향해야 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말했다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라. 그러면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줄 것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한마디 보탠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 라고···

셋째,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첫 대면에서 그 특징들을 거의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의 판단에 의한 첫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딱 보면 앱니다.’ 라는 개그맨의 멘트도 있지 않은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판단을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결정을 하고 난 후 실천에 나서면 이미 때는 늦어 버릴 때가 있다. 반대로 다른 이웃국가들은 빠른 결정을 한다고 한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만기 덴톤스리 상임고문의 주장이다.

중국 기업들의 빠른 혁신능력은 매우 위협적이다. 과거 중국은 만만디(慢慢地: 천천히)’ 한국은 빨리빨리문화였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중국이 콰이콰이(快快: 빨리빨리)’ 혁신을 이루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지체된 정의는 결코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살려야 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시의 적절하게 빨리 빨리 결정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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