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현대사의 발전과정을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 간의 한국형 ‘선순환 발전모델’이라고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와 시장주의 경제가 서로를 향해 순차적으로 발전을 촉진시키고 견인하는 역할을 한 ‘한국형 정치·경제간 선순환 발전모델’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작성일 : 2024.11.10 05:22 수정일 : 2024.11.11 06:12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한국은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 간의 ‘선순환 발전모델’을 만들었다.
한국인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초과하여 달성했다. 세계가 놀란 것은 경제와 정치혁명이라는 두 가지 기적을 거의 동시에 이뤄냈다는 데 있다. 하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이룩한 경제발전이고, 또 하나는 1980년대에 이루어낸 정치민주화다. 지구상에는 이 두 가지 과제 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나라가 아직도 많다. 그 나라들은 낙후된 상태에서 가난과 억압 속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초 82달러에 불과했던 일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3만 달러를 넘어 서게 되었다. 이런 경제성장도 놀랍지만 정치사적인 면에서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불과 10년 만에 민주주의 터전을 공고하게 다진 아시아의 최초국가가 아닌가? 한국인은 선거를 통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규범을 내면화한지 이미 오래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뤘다. 이와 같은 경제발전과 함께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었다.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숱한 정치적 고통들을 감수해야 했다. 8·15 광복이후 나라의 틀을 잡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오랜 독재 끝에 학생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했다. 경제 기적을 일구면서 장기 집권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 또한 부하의 총에 시해되면서 독재 정치의 막을 내렸다. 박정권 18년 동안 경제성장이라는 찬란한 빛이 있었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그림자가 있었다. 빛이 크면 그림자도 커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이후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또 다른 군부세력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 군인정치가 연장된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은 계엄령 선포 등 공포감을 조성한 후 1981년 간접 선거를 통해 변칙적으로 집권하게 된다. 6년 후인 1987년 전두환은 그의 육사동기인 노태우에게 권위적인 정권을 물려주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음습한 움직임에 대해 학생들을 비롯한 의식 있는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였고, 소위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이 대거 시위에 가세하는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다. 이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6.29선언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무릎을 꿇게 된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민주화의 공고화가 진행되었고 이때부터 1997년까지를 ‘87체제’ 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권위주의 독재 정권하에서 30년을 저항하던 우리 국민은 1990년대에 들어 5년 마다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을 맞고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그래서 이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 등잔 밑이 어두웠다. 2016년 말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가 급기야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 한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다. 무력이나 혁명적인 수단이 아닌 제도적 장치에 의해 대통령을 탄핵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정을 농단한 무능한 대통령을 제도를 통해서 끌어내렸다. 정치권력을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민주적으로는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60년대로 돌아가서 경제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땅속에서 중석(重石)을 캐서 세계시장에 내다 팔고,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팔았던 그때, 그 빈곤에 찌든 나라가 이제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었다. 지구촌 어느 시장에 가도 우리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가장 각광을 받는 제품들이다. 삼성 스마트 폰, 전자제품, TV, 현대·기아차, 각종 화학제품, 반도체 등이 우리의 대표 상품이 아닌가. 이외에도 수 백 가지 상품들이 세계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 않는가.
경제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시대 상황에 맞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세계시장을 개척해 왔다. 서구 선진 국가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룩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의 이행을 우리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단 한 세대 만에 완성했다.
60년 초에 수출 품목이라곤 지하자원밖에 없었던 척박한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섬유와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수출하였다. 70년대에 들어 경공업 중심의 허약한 경제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공업국가로 변신하여 산업화에 성공한다.
하지만 어려운 굴곡도 있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위기였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우리는 관치경제에서 벗어나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위기상황에서 여·야간 정권교체를 최초로 이룬 김대중 정부는 기업 주도의 자유경쟁 원리에 입각한 시장주의를 제도화하였다. 이때부터 ‘97체제’의 막이 열린다. 이 시기에 정부는 관치금융 구조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새로운 경제운영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97체제 하에서 한국은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반도체, 건설, IT, BIO 등 어느 한 분야도 선진국에 뒤지는 않는, 즉 굴뚝산업과 첨단산업이 고르게 발전한 선진 공업국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정보통신 일등 국가로서 생명공학, 뇌과학, 대체에너지, 하이퍼 농업 등 미래 먹거리의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정리하면, 성장된 경제는 정치를 민주화시켰고, 민주화된 정치는 다시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일찍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키고 완성했던 ‘87체제’와 ‘97체제’는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2017년에 일어난 촛불 민주운동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한 층 높게 업그레이드 하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겼다. 그러나 실기하고 말았다. 개헌을 통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편했어야 했다.
우리가 현대사를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는 순서를 바꾸어서 서로를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경제발전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 결과로 이뤄진 경제발전은 정치분야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그것이 바로 ‘87체제(경제발전→민주주의 발전)’ 출범이었다. 뒤이어 민주정부는 관이 주도하는 시장을 ‘기업이 주도하는 자유경쟁 시장’으로 전환하였다. 이를 ‘97체제(정치성숙→시장주의 발전)’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정치적으로 ‘2027체제(경제선진화→기회균점주의와 창발적 역동성을 발휘하는 민주주의로 고도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개헌을 통해서 집중형 권력구조를 분산형 권력구조로 바꿔 정치에 다양성을 부여해야 한다. 기회와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 안에서 성장하여 한국 정치의 메커니즘(mechanism)에 능숙한 직업 정치인과 더불어 정치권 밖의 큰 비전을 가진 명망가, 분야별 전문가들의 정계 진출도 필요하다. 이들이 쉽게 진출하도록 여·야 정당의 정치인 충원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끼리끼리 정치권에 연줄을 형성하여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만의 리그가 되어선 안 된다. 그 자리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사명의식을 갖고 자기의 비전과 경험을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봉사로서 정치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생계형 직업인으로서 정치인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필자는 우리 현대사의 발전과정을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 간의 한국형 ‘선순환 발전모델’이라고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와 시장주의 경제가 서로를 향해 순차적으로 발전을 촉진시키고 견인하는 역할을 한 ‘한국형 정치·경제간 선순환 발전모델’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앞으로 우리는 한 가지 혁명을 더 보태야 한다. 지금까지 이룩한 성공사례, 즉 정치·경제 순환모형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 그것은 기회균점주의와 창발적 역동성이 살아 숨 쉬고 이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하도록 정치구조를 선진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편을 위한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7년 개헌과 함께 ‘2027체제’를 열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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