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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사진은 우리 군 CCTV에 잡힌 동해선 도로 폭파 장면. ⓒ 연합뉴스 |
지난 15일,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남북교류의 상징이었던 육로와 철도 중 두개 축선의 육로를 MDL 북측 10m지점에서 절단했다. 김정은이 지난 해 12월말, 당 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한 선언을 가장 상징적으로 시현(示現)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태는 10월 11일 북한 외부성이 중대성명을 통해 "대한민국이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고 주장한 이후, "무인기 평양 침투에 분노한 청년 140만 명이 입대 의사를 밝혔다"며 분위기를 띄우는 등 연일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상황과 오버랩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인식이 국내외에 확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북한의 전략적 의도에 부합된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를 찾으려면 최소한 지난 해 말부터 이어져 온 북한관련 주요 일지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23일, 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한 한국의 대응을 빌미로 9.19 군사합의의 완전한 파기를 선언했다. 올 1월 초에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에 따른 실질적인 조치를 주문하면서 4월부터는 남북연결지점의 비무장지대 일대에 지뢰를 묻고 북방한계선 일대에는 방벽구조물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5월 18일부터는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응해 오물풍선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를 규탄하며 한국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으나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0월 중순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약 6,000개 이상의 오물풍선을 날려보내고 있다.
대북전단과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은 지금까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일부 대북전단은 그동안 세습 독재정권 유지에 정통성을 부여해 온 백두혈통의 민낯을 북한주민에게 알릴 수 있는 내용이어서 자칫 북한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지난 7월초에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을 공개처형한 사례는 북한 정권이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을 이탈한 고위급 관리의 증언이나 내외신을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의 주민통제가 상당부분 무너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사상적 통제가 약해지는 데는 경제상황도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7월 26일 발표한 '2023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23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는 2022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3.1% 증가했다. 주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농림어업 부문은 1% 증가했다. 특이한 부문은 건설업과 전기가스수도사업이다. 건설업은 8.7%가 증가한 반면 전기가스수도사업은 4.7%가 감소했다. 일반적인 산업구조에서는 건설업이 증가하면 전기가스수도사업도 비례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쉽게 얘기하자면, 사람이 살 집은 많이 지었는데 여기에 들어갈 전기와 수도는 설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반적인 북한 경제의 난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올 7월 말에는 평안북도일대에 대규모 홍수가 나서 큰 피해를 입었다. 압록강 유역은 북한의 몇 안되는 평야지대 중 하나이다.
이렇듯 주민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사상적 이탈현상이 가속화되면 북한 당국으로서는 정권 유지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외부의 위협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이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책략을 동원하고 있다고 선전함으로써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책략에는 구체적으로 민간단체를 가장한 정권차원의 대북전단 살포, 9.19 군사합의의 파기, 대북확성기 방송, 무인기 침투 및 전단 살포 등이 해당할 것이다. 따라서, 전단이나 대북방송 내용에 현혹되면 이적행위라는 또하나의 처벌 논리가 생기는 것이고, 남쪽의 군대가 언제 침략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급하게 비무장지대의 통로에 지뢰를 묻고 대전차방벽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에도 오물풍선을 계속 날릴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남북연결지점 일대의 비무장지대에 지뢰를 묻고 전 전선에 걸쳐 방벽을 쌓으며 연결도로를 폭파한 사건들이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천명했기 때문에라고 해석하는 것은 동기와 행위의 관계를 혼동한 결과이다. 김정은의 정치적 수사도 행위에 해당한다. 이 행위의 동기는 정권유지에 필요한 내부통제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치적ㆍ전략적 행위가 지난해 말부터 보여 온 북한의 행태들이다. 북한 외무성의 10월 11일 중대성명이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남북 간 긴장 고조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 특히 북한 주민의 폭넓은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북한 정권의 전략적 의도인 것이다. 평양의 방공망이 뚫렸다는 비난보다 대한민국의 침략의도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작극으로 의심되는 그러한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만으로 확대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인기 침투라는 실체적 위협을 등장시켜야만 했으며, 이의 연속선상에서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명분하에 북한은 '핵무력을 보유한 국가'로서 이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전략적 도발을 감행할 수 있으나, 국제적인 상황이나 북한의 핵 시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인다. 결국 군사적 도발이 가장 가능성 있는 방안으로 남아 있다. 북한 정권의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동기에서 최근의 행태를 이해하면서도 군사적 도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