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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8일, 전날 휴대용 호출기가 폭발하여 사망한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수많은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고 있다. ⓒ Fox News |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의 작동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안드로메다 A」라는 소설의 소재를 소개하고 있다. 지구로부터 200광년이나 떨어진 안드로메다 외계인은 대형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관한 암호화된 지령을 수개월에 걸쳐 우주로 송출했다. 조드렐 뱅크 천문대에 있는 전파 망원경에 포착된 이 메시지는 지구인에 의해 해독되어 컴퓨터가 조립되고 프로그램이 작동했다. 그 결과는 거의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인들이 트로이성에 입성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사용했다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인들은 10년 간의 성과 없는 포위 공격 끝에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고 오디세우스 자신을 포함한 엄선된 병력을 내부에 숨겼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를 떠나는 척 했고 트로이인들은 승리의 트로피로 목마를 그들의 도시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그리스군은 말에서 조용히 나와 떠나는 척 했던 나머지 그리스군과 함께 도시를 함락했다. 해커들이 사용자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악성코드의 이름이 트로이 목마다.
9월 17일부터 이틀에 걸쳐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사용 중인 호출기와 무전기가 폭발하여 최소 32명이 사망하고 3,1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도청과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5개월 전 호출기와 무전기를 대량 구입해 대원들에게 지급했는데 이 기기들이 폭발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모사드가 2년 전 BAC 등 유령회사를 차리고 제조 과정에서 기기에 폭발물을 심은 뒤 헤즈볼라에 공급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갈란트 국방장관은 17일 “중력의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병력과 자원ㆍ에너지를 북쪽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가 새로운 전쟁 단계의 시작점에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 배후설을 간접 시인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의 규탄이 쏟아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에서의 극적인 긴장 고조이자 심각한 위험으로,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인권 수장은 국제법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특정 대상을 표적으로 삼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무차별적 피해를 입었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러한 비난을 감내하는 일은 자국민들이 또다른 디아스포라를 겪는 아픔에 비해 훨씬 수월한 일일 것이다.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얘기가 아니라 국가의 생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의 챠오랑과 왕상수이가 쓴 「초한전(超限戰)」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오늘날 (전쟁)수단의 유효성에 대한 평가는 주로 수단의 속성과 윤리 기준의 부합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원칙에 부합되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 원칙은 바로 (전쟁의)목표달성을 위한 최적의 경로 원칙이다. <중략> 우선 초월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수단 자체에 숨겨진 윤리 기준 혹은 원칙이다." 투박하고 거칠기는 하지만 이는 국가들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원칙이며 전쟁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이러한 원칙이 지배해 왔다. 로버트 케이건은 최근의 국제사회를 두고 다시 정글이 돌아오고 있다고 표현했다.
전쟁의 미래를 얘기할 때 우리는 흔히 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스타워즈식 전쟁을 떠올린다. 하지만, 미래의 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평시와 전시가 구분되지 않고 군사적 수단과 비군사적 수단이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에서 안드로메다 외계인이 보낸 암호 메시지가 해독되고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벌써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로이 목마는 통신기기의 모습으로, CCTV 카메라의 모습으로 우리 안보의 최일선에 들어와 있을 수 있다.
대북 심리전방송을 재개하며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북한은 계속하여 오물풍선을 날려 보내고 있다. 짜증 나는 일이지만 매일 매일 날아오는 풍선은 언젠가 우리를 무디게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절적 요인으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나 COVID-19 등이 확산하게 되면 풍선의 내용물에 변종 바이러스가 슬며시 더해질 수 있다. 그렇잖아도 의료사태로 인해 국가적 대응역량이 저하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격이 자행된다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적 리더십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소설같은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안보에 대한 보다 유연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