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에 나타난 우리의 독창적인 신흥종교는 우리의 원형적 기질을 되살렸다. 이 종교운동은 강일순(증산)의 증산교, 박중빈(소태산)의 원불교, 최제우(수운)의 동학에서 일어난다.
작성일 : 2024.09.04 05:27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조선 후기 우리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종교적인 노력들
유교 이데올로기 하에서 몸속 깊숙이에 숨어서 움츠러들기만 했던 ‘잠재적 역동성(은근)’이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이것이 ‘저항적 역동성’으로 발산되어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서 글로벌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역동성은 ‘창발적 역동성’으로 승화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불굴의 창발적 역동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정리하면, 조선시대〔은근과 끈기〕→ 일제 강점기〔불굴의 저항적 역동성〕→ 현대〔불굴의 창발적 역동성〕으로 성장해 왔다고 하겠다. 이러한 변화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종교사적인 노력들을 살펴보자.
조선 말기에 나타난 우리의 독창적인 신흥종교는 우리의 원형적 기질을 되살렸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성리학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또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부 선각적 지식인들은 유교의 후진성과 비현실성을 깨닫게 된다.
정약용 등 실학자들은 유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의 사유체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중엽이 되면서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만을 받아들이는데서 벗어나 한국인 스스로 종교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종교 운동가들은 우리의 전통적 기성종교인 무교, 불교, 유교를 독특하고 창의력이 번득이는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수준 높은 우리의 종교를 만들게 된다. 이 신흥종교들은 도교에서 주문 외우기, 호흡법 같은 수련법을 빌려오고, 유교에서 효나 충과 같은 세속윤리를 가져오고, 불교에서는 업보설 등을 차용해서 신도들의 윤리규정으로 활용한다.
이 종교운동은 강일순(증산)의 증산교, 박중빈(소태산)의 원불교, 최제우(수운)의 동학에서 일어난다.
우리 민족의 무교(샤머니즘)가 계승되어 한 단계 발전한다. 증산교가 그 결과다. 증산교의 핵심은 해원상생(解怨相生)이다. 천지가 열린 이래로 지금까지 쌓여왔던 ‘한(恨)’이 다 풀려야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처럼 겁난에 쌓이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한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서 한을 푸는 것, 즉 해원(解怨)은 무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증산교의 해원상생(解怨相生) 교리는 우리의 무교가 한 차원 높게 탈바꿈한 것이다.
불교도 우리의 관계론적 사유방식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한국적인 시각에 맞게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불교를 개혁하는 과업이 소태산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는 원불교로 집대성된다.
원불교의 대표적인 교리 중에 하나는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인데, 그 의미는 모든 곳에 불상이 있고, 모든 일이 불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을 하면서 불법을 닦는다는 ‘불법이 곧 생활’이 원불교의 모토다.
처처발상, 즉 세상의 모든 것이 불상이니 불상을 별도로 만들어 모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소태산은 무정물에 불과한 불상을 법당에 모셔놓고 이를 숭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아주 간소하게 진리를 상징하는 원을 만들어 예배하게 된다. 우리는 본질론이 아닌 관계론 방식으로 사유한 결과, 원불교가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된다.
한편, 유교의 성리학조차도 우리 토양에 맞게 개조된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동학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내면에 신령한 생명이 있는데, 이를 한울님(天主)이라고 한다. 이런 한울님을 잘 키워 온전하게 발현하면 그 한울님은 바로 하늘의 성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리로서 정리되는데 바로 ‘사람이 곧 하늘’ 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다. 한울님은 성리학의 핵심인 인성론(마음론)에서 빌려온 것이다.
조선말에 와서 우리의 무교(샤머니즘)적인 DNA가 증산교로, 우리의 관계론에 입각한 자유분방함이 원불교로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유교(성리학)까지도 재해석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사유체계인 인내천 사상으로 발전시키고 천도교(동학)을 일으킨다.
조선 말 우리 선조들은 본질주의적인 질곡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유한 자유분방함을 되살려 종교적 창발성을 발휘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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