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의 무교(샤머니즘)을 무시하는가? 무교(샤머니즘)의 정신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작성일 : 2024.08.02 06:40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한국에서 모든 종교는 무속(샤머니즘)에서 출발한다는데·· 신바람이 그것을 증명한다.
종교학자 그리고 철학자들 중에 우리의 종교는 대부분 무속(샤머니즘)에서 출발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무속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 샤머니즘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샤머니즘은 원시적 종교의 한 형태이다. 주술사인 샤먼이 신의 세계나 악령 또는 조상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인 교류를 하며, 그에 의하여 점복(占卜), 예언, 병 치료 따위를 하는 종교적 현상이다. 아시아 지역 특히 시베리아, 만주,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① 왜 우리의 무교(샤머니즘)을 무시하는가?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제천행사를 하는 데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서 몇 날 며칠을 지샌다고 했다, 이 때 제천행사의 중심에는 무당이 있었다. 신라시대에 박혁거세나 남해 차차웅이 무당이었고, 고려시대에도 무당들의 활동이 왕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 미신 탄압정책에 따라 핍박을 받았지만 무당은 계속 활동하였고 왕실에서조차 굿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일반 서민들도 우환이 생길 때면 굿을 하였을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일제 강점기에도 헌병이 동원되어 무당을 짓밟았지만 무교의 끈질긴 생명력을 잠재우지 못했다.
우리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합리주의의 꽃을 피우는 등 정신적, 물질적 측면에서 세계 선진 반열에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무교의 신당이나 무당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서울 시내에만 굿당이 수십 개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당들의 권익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에 등록된 무당만해도 10만 명을 넘는데, 등록되지 않은 무당을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 국민은 자신들의 종교에 관계없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무당한테 달려간다.
일부 지식인들은 우리의 종교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무교를 미신으로 폄하하여 종교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일본의 신교(神敎)는 무교와 비슷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세계 종교의 반열에 올라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을 무시하는 태도는 주체성 없는 어리석음의 한 단면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에서 수입되어야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하고, 이 땅에서 생성된 종교는 그저 무시하는 태도는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② 샤머니즘이 종교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종교적인 측면에서 무교(샤머니즘)를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종교를 이루려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초월적인 실재, 사제, 신도이고, 이와 함께 고등종교가 되려면 경전이 필요하다.
무교는 위의 세 가지 요소와 더불어 굿이라는 매우 수준 높은 의식을 가진 엄연한 종교라는 것이 종교학자인 최준식 교수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무교에는 경전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그 이유는 무당들이 접신에 대해 글을 남기지 않았고, 오로지 신과의 접촉만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최치원은 현묘지도(玄妙之道)를 무교라고 하였는데, 현묘의 ‘玄’은 어슴푸레한 어두운 색깔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이것과 저것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조금 어려운 말로 설명하면, 유(有)와 무(無)가 서로 의존하여 분명한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의 존재근거를 나눠가지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상태를 말한다. 즉, 있는 것(유)과 없는 것(무)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유와 무가 꽈배기처럼 꼬인 상태로 서로를 안아주는 그런 관계를 말한다.
이런 면에서 샤머니즘의 핵심은 황홀경(恍惚境: Ecstacy)이다. 여기서 ‘황’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상태이고, ‘홀’은 칠흙같이 깜깜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상반된 성질을 갖는 극과 극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을 황홀이라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무교를 ‘Ecstacy에 이르는 고대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황홀경은 망아경이라고도 하는데, 망아경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상태이고 자기를 잊으니 남도 없어지고 그렇게 되니 질서정연한 것보다는 카오스 상태가 된다. 이런 전통 때문에 한국인들은 지금도 숨 막히는 질서를 참지 못하고 자유분방한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③ 우리 생활 속의 무교(샤머니즘) 흔적들을 살펴보자.
이러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무교적 풍습은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농촌지역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무당굿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어느 집에 우환이 계속될 경우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는데 그때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처음에는 맹숭 맹숭하게 시작된 굿판은 무당의 신바람 나는 춤과 노래 그리고 주술에 따라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모든 사람이 황홀경에 빠져 땀에 흠뻑 젖는 클라이막스에 이르게 된다. 이런 모습은 기독교의 부흥성회 에서도 볼 수 있다.
먼저 찬송가를 열창하면서 분위기를 잡아가고, 그 다음 목사님이 등장하여 짧고 간명한 내용의 설교를 반복한다. 그리고 통성기도가 이어지는데 그 시간에는 모든 신도들이 손을 위아래로 흔들고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보다 깊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시끄러운 기도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어떤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시작한다. 집단적인 황홀경 속으로 빠져 들게 된 것이다. 여기서 찬송가라는 노래와 격렬한 몸짓으로 방언을 유도하는 것은 무당들이 춤과 노래로 신령을 모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TV를 통해 김일성·김정일이 주재하는 행사에 참석한 북한주민들이 빨간색 꽃술을 흔들고 환영하면서 기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 또한 샤머니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생활 곳곳에서 샤머니즘적인 요소들이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적 감각으로 세련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몸속에도 이런 샤머니즘이 깃들어 있다고 하면 웃을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가 술 마시는 관행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밥을 산다고 해놓고서 진짜로 밥만 살 경우에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 1차로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2차 3차까지 가야만 제대로 대접받았다고 칭찬을 한다. 그렇지 않고 달랑 밥만 사면 돈 쓰고 욕만 얻어먹는 꼴이 된다.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술판이 벌어져야 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망아지경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지 않던가?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샤머니즘적 진면목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는 ‘신바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신바람은 먼 옛날 샤머니즘의 DNA가 우리의 핏속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결과물일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을 보자.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잘살아 보세’하고 사회분위기를 띄우자 온 국민이 밤잠을 설치면서 신바람 나게 일하며 새마을 운동에 동참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각 가정에서는 장롱 속에 깊이 숨겨두었던 자녀들의 돌반지까지 들고 나왔다.
유목민족은 공동의 이익이 걸린 위기상황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단결하고 협력하는 정신적 원형을 갖고 있는데, 이런 결집력이 현재의 우리 핏속에 그대로 남아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아닌 예술활동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자유분방함의 미학’도 그 연원을 샤머니즘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무교는 질서정연함보다는 신명, 황홀경(망아경)을 추구하는데 이러한 화끈한 정신이 우리 예술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격식을 차리고 규범을 좇는 것을 싫어하며, 대칭보다는 비대칭을 선호하고 세부적인 것 보다는 큰 틀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이 우리의 음악이나 춤에서 즉흥성이나 역동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이처럼 무교(巫敎)는 한국인의 의식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④ 무교(샤머니즘)의 정신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샤머니즘은 외부로부터 다른 종교들이 들어올 때, 그 종교를 한국화(韓國化)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 종교는 무교를 흡수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교화(巫敎化) 된다고 한다. 표층적인 종교는 불교, 유교, 기독교로 바뀌어도 내면에는 샤머니즘이 무의식적으로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샤머니즘과 우리의 정신사를 정리해 보자.
우리 민족은 내면에 샤머니즘적인 자유분방함을 간직하고, 이것을 체질화하였다. 현대 철학의 기준으로 보아도 ‘관계론’적 사유의 DNA를 품게 한 우리의 샤머니즘은 낮게 폄하될 이유가 없다. 원시 종교인 샤머니즘은 기마·유목민족의 ‘역동성’을 ‘신바람 역동성’으로 우리 가슴속에 자리 잡게 했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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