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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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자기무시/자기모순적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생각의 창’을 활짝 열자.

나는 반드시 해 내고야 말겠다는 ‘당위(should)의 부정성’을, 이제 나는 충분하다 즐기면서도 해 낼수 있다고 하면서 맞서는 ‘능력(can)의 긍정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은 ‘해야 한다’의 당위성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생산적이고, 속도에서도 더 빠르기 때문이다.

작성일 : 2024.07.30 01:03 수정일 : 2024.08.03 06:39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이제는 자기무시/자기모순적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생각의 창을 활짝 열자.

 

먼저, 우리의 모순적 자화상을 소개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기 행위의 앞뒤가 뒤틀린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1 전근대사회의 자기무시적 아집 사례: 한 아버지의 같은 씨인데도 첩의 태생은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서얼로 취급하는 자기무시적 행태.

소인(홍길동)이 대감(홍판서)의 정기를 타고 당당한 남자로 태어났사오니 이만한 즐거움이 없사오되, 평생 서러워하기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못하여상하 노복이 다 천히 보고, 친척과 고구(故舊)도 손으로 가리켜 아무의 천생(賤生)이라 이르오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에 있사오리까”(홍길동전 한 대목).

#2 현대판 자기모순적 아집 사례: 국내박사 vs 미국박사

국내박사라 한 끗 아래로 봐요. 논문도 많이 쓰고, 강의 경험이 풍부해도 교수로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미국박사가 국내박사보다 더 우수하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럴 거라면 왜 박사학위를 수여했을까...

자기들이 가르쳐서 자기들이 논문을 심사하고 자기들이 박사학위를 주었는데도, 자기들 스스로 제자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등을 돌립니다. 일부 교수들은 박사과정의 학생을 현대판 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풍토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자기모순적 행태가 바뀌어야 합니다(국내박사학위 소지자의 넋두리).

이제 선진국 국민, 일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 아니 4만 달러인 시대에 맞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과 남을 구분하여 타자를 따돌리고, ‘자기와 가까운 우리 끼리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규율, 강제, 의무, 배타성 등 부정성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다.

달라져야 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생각의 창에 긍정성을 끌어들여 자기 주도, 성취감, 자존감, 관용, 타자와의 협력 등 열린 프레임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나는 반드시 해 내고야 말겠다는 당위(should)의 부정성을, 이제는 나는 충분하다 즐기면서도 해 낼수 있다고 하면서 맞서는 능력(can)의 긍정성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도 어렵지만 앞으로 더 어려워 질 미래를 더 쉽게 헤쳐 나갈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은 해야 한다의 당위성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생산적이고, 속도에서도 더 빠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 젊은 선수들은 사격, 펜싱, 양궁 등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MZ세대들이 할 수 있다는 능력의 긍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능력의 긍정성이 갖는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더 과감하게 새로운 생각의 창(프레임)’을 정립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향유할 기회를 찾고, 한국인이 나가야 할 선택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창의 방향을 바꾸고, 그 크기를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새로운 혜안들을 소개한다.

김용운 교수가 주장하는 민족의 원형과 그 원형에 입각한 원형사관,

윤내현 교수가 말하는 역사의 발전법칙,

건명원(建明苑) 오정택 이사장이 제시하는 진정한 혁신방법,

신채호 선생이 일제 강점기에 통곡하면서 역설한 자주성과 자존감의 회복이 그 것이다.

김용운 교수(저서: 풍화수(風水火))는 민족마다 고유의 성격, 즉 원형(原型)을 갖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비슷한 역사적 국면에서 같은 패턴을 되풀이 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원형사관(原型史觀)을 설파하고 있다.

민족 문화의 원형이란 민족 공동체의 마음에 해당하는 집합적 무의식이다. 원형은 문화의 핵(core)으로서 역사의 전개 양식에 고유한 패턴을 만든다. 모든 문화의 뿌리는 원형이고 줄기는 언어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속한 문화의 규제를 받으면서 그 기반위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

과거의 민족적 역사체험이 오늘의 시대 원형을 결정하고, 오늘의 민족적 역사체험이 다음 세대의 시대 원형을 결정한다. 각 시대의 원형은 항상 원시 원형을 내포하고, 민족 구성원은 내일의 원형 형성에 참여한다. 민족적 역사 체험은 문화와 역사에 충격을 가하며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 반영된다.

원형사관은 개인에 관한 정신분석적 작업을 언어와 역사를 지닌 민족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형사관은 민족의 의식구조와 사유방법을 인식하게 하고 되풀이 되는 역사에서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원형사관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 진로 결정에 개입하는 미래학과도 연관된다.

둘째, 한국고대사 연구에 있어 큰 획을 그으신 윤내현 교수(저서: 고조선 연구)가 말하는 역사의 발전법칙이다. 이 법칙은 앞으로 전개될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리가 취할 방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하 ( )안은 필자가 덧붙인 것이다.

역사는 상호작용에 의해 발전한다. 서로 다른 것이 마주쳤을 때 자극을 받고 창조가 일어난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이다. (그러나) 동일한 것끼리 만났을 때는 약한 쪽이 강한 쪽에 종속될 뿐, 창조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개방은 (우리)한민족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문물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창조적인 발전을 위해 (우리)한민족은 민족철학, 민족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외래 문물과 마주치면서 창조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세상에 없던 학교로 불리는 건명원(建明苑)을 설립한 오정택 이사장이 그 입학식에서 했던 축사의 내용이다.

이 시대를 버리십시오. 저희 세대까지는 열심히 하면 밥 먹었고, 남의 것 베껴서도 밥은 먹었습니다. 그러나 30년 후 여러분의 시대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식이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교수들께 당부드립니다. 학생들을 이 시대의 반역자로 키우십시오. 이 시대를 거역해야 다음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조선말에 신채호 선생께서 쓰신 눈물 어린 통곡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선생이 192512일 동아일보에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내용의 일부이다.

우리 조선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한 도덕과 주의는 없다.

!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통곡하려 한다.

앞에서 석학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철지난 지식과 시각으로 우리의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현재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우리는 과거의 칼로 미래와 싸워선 안 된다. 과거의 칼은 미래에 대응하는 수단이 아니고 단지 참고해야 할 역사의 유물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 미래비전을 세우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 세계를 품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계를 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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