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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피서브 포럼에서 열린 2024년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행사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헤럴드경제 |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지만, 21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 대통령후보직 사퇴는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미 대선의 향방이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있었던 트럼프 후보의 수락연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약 90분간 진행된 이 연설에서 트럼프후보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신의 1기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각 분야에서의 보수적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임을 역설했다.
이번 연설에서 '한국(Korea)'이라는 단어는 두번 등장했다. 첫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정정파 하마스 간 전쟁, 그리고 대만·한국·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에서 분쟁의 불씨가 커지고 있는 등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벼랑 끝에 서 있다."라는 표현에서 등장했다. 두번째는 "대통령재직 시 핵무기를 많이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내면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막았는데, 지금은 북한이 도발하고 있지만 대선에서 승리하면, 자신의 복귀를 원하는 김정은과 다시 잘 지낼 것이다."라는 표현에서 등장했다.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지난 1기 행정부 때부터 줄곧 외치고 있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기치 아래,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관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려 한다는 우려이다. 주한미군의 감축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거나 주둔비용 분담액의 증액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1기 행정부 때의 선례가 학습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또한, 북핵에 대해 신중하고 정교하지 못한 Top-Down식 접근으로 인해 대북 비핵화 로드맵에 혼선을 가져왔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이번 연설을 두고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이나 북한의 핵동결을 전제로 한 빅딜 가능성에 대한 예측도 있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의 심화, 국제적 분쟁가능성의 확대, 북핵의 고도화 등 우리의 안보현실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우려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2017년 11월, 당시 대통령 신분으로 방한하여 우리 국회에서 했던 진중하고 세련된 트럼프의 연설을 기억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어쩌면 그 연설은 그가 우리 국민에게 직접 전달한 유일한 메시지였다. 그만큼 트럼프의 의도된 정치적 수사(rethoric보다는 bluffing)와 태도가 우리의 뇌리 속에 깊히 박혀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했을 때, 대 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자료를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
2024년 대선을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정책 플랫폼으로 Agenda 47이 있다. 이 제안은 예비선거 시즌에 공개됐으며, 기후 변화와 교육에서 경제와 이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먼저, 외교 부문에서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한 우크라이나전쟁의 종식, NATO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재평가, 군사력 재건을 위한 막대한 예산의 투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안보 부문에서는 미사일방어체계의 고도화와 중국의 간첩활동 차단에 관한 제안이 포함되어 있다. Agenda 47에 포함된 제안들이 집권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측된 상황에서 적어도 외교안보 부분에서 한반도 상황과 직접 관련된 사안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만든 보수 이니셔티브인 Project 2025가 있다. 공식명칭은 2025 Presidential Transition Project이다. 이는 차기 보수당 대통령을 위해 2023년에 발행한 일종의 플레이북으로, 행정부의 재구상과 보수적 이미지로 연방 정부 기관을 개편할 계획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 프로젝트와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후 헤리티지 재단과 거리를 두고 있고, 한 관계자는 Project 2025는 어떤 후보도 대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트럼프의 전직 핵심 참모들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 내용들이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시행되었던 정책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사실로 봤을 때 미국의 향후 대외정책을 가늠하는 데 꽤 의미있는 자료이다.
Project 2025의 국방 부문에 제시된 핵심은 ▲ 중국에 대한 거부적 방어의 우선시, ▲ 동맹의 재래식 방위 부담 분담의 증가, ▲ 핵 현대화와 확장의 구현, ▲ 동맹의 대테러 부담 분담의 확대이다. 미국은 중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 필리핀, 대만, 일본, 한국 등을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크게 우려하면서, 중국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거부적 방어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의 큰 방향은 여기에 숨겨져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재래식 방위 부담과 관련하여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방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우려하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 분담액의 증액에 관한 모티브를 발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Agenda 47이나 Project 2025의 다른 부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두 개의 주요 지역 우발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군사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방위비 증액과 관련하여 트럼프의 주 관심은 NATO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공식적 자료를 인용하여 트럼프 재선 시 우리가 우려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란 판단은 속단일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은 Agenda 47이든 Project 2025든 트럼프와 미 공화당의 관점은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한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며 다중적 접근이라는 점이다.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의 방위를 위해 왜 미국민의 혈세를 그렇게 많이 써야 하느냐?", "핵무기를 많이 가진 김정은과는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 등의 정치적 수사에 현혹되어 국제정세의 도도한 흐름과 각 국의 역학관계에 관한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상황 앞에서 지엽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도 안된다. 차분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국제정세를 분석하면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현실적인 방향을 모색해 나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