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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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두려워 하면 전쟁으로 망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전쟁과 평화의 역설을 이해해야...

작성일 : 2024.07.12 09:21 수정일 : 2024.07.12 10:58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북한의 공개처형 추정 장소 위성사진( 함흥시 사포구역 호령천변-좌, 청진시 수남구역 수성천변-우)   ⓒ 2024 북한인권보고서


  TV조선은 7월 10일 정부당국 관계자의 말을 빌어, 북한 당국이 대북전단 속 USB에 담긴 한국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학생 30여 명을 지난 주 공개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이 정부 관계자는 "풍선에서 USB를 주워 한국 드라마를 보다 적발된 중학생 30여명이 지난 주 공개 총살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지난 달에는 고교생 나이인 30여명에게 무기징역과 사형을 선고한 적이 있었다. 한편, 2022년 10월 초에도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대량 유포한 혐의로 고등학생 3명을 공개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행위는 모두 지난 2020년 12월에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근거하고 있다. 이법은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장법(2023)'과 함께 김정은 시대의 3대 사회통제 악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법들들은 모두 한류문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 등 김정은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뿌리뽑기 위해 제정됐다. 그만큼 북한 당국이 미래세대의 사상오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반사회적ㆍ반인륜적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이 지구상에서 반드시 축출되어야 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탈북민 단체의 무분별한 대북전단살포와 정부의 방관적 태도로 몰아 비판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북한주민, 특히 청소년의 희생을 불러온 대북전단 살포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이러한 여론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한 적이 있었다. 2021년 3월 30일,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및 기타 물품의 살포 행위를 금지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일부 개정안을 발효시켰다. 당시 야당과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강한 반발이 있었다.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이 조항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2023년 9월 26일에 효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러한 여론의 뿌리는 여전히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내재되어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우리의 대북전단 살포금지 조치와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 사이에 긍정적 상관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표면적인 화해모드로 전환되었던 시기에도 북한 주민의 인권은 여전히 악화되고 있었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로 인해 최소한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어린 학생들이 처형될 일은 없을 것이라 주장할 수 있으나, 그러한 순진한 생각 때문에 현재 북한의 인권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한정권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한주민의 인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끊임 없이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우리 사회의 주류라 할 정도로 생겨나는 것일까?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 국민의 전쟁에 대한 공포심,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갈등과 대립상황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하는 한국의 전략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현재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발견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7월 9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과 관련해 오는 19일과 26일 두 차례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청원에 올라온 5가지 탄핵 사유 중 하나가 9·19 합의 파기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 등 전쟁 위기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9·19 합의 파기의 단초는 우리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북한의 세번째 정찰위성 발사가 제공했다. 합의를 전면 파기한 것도 북한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우리 머리 위로 날려보내는 참기 힘든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정작 위기를 자초한 북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우리 정부가 전쟁 위기를 조장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또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우리라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탄핵 청원의 사유를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치철학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F. Gramsci)는 지배계급이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사회적 동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지배를 지속한다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헤게모니이론이다. 다시 말해, 정치엘리트는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치이념적 헤게모니를 확보해 가고, 그러한 헤게모니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한다. 적어도 현재 대한민국 정치엘리트가 형성해 놓은 주류 헤게모니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평화'라도 유용하다는 명제이다. 이는 다분히 정치이념적 사고과정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헤게모니는 안보적 관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위협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적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위기 앞에서 인지부조화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광이 되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하면,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그것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국민적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우리가 5천년 역사를 이어오는 데 원동력이 된 '상무정신(尙武精神)'이다. 우리의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은, 상무정신이 약해지면 언제나 국가적 위기와 고난이 닥쳐왔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다시 '정글(Jungle)'이 되어 가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가적 헤게모니는 상무정신이어야 한다. 국가 리더십의 큰 사명은 바로 이러한 상무정신을 회복하는 데 있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전쟁을 통해서라도 얻어내야 하는 '피의 산물'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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