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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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碑木) 이야기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웅들을 기리며....

작성일 : 2024.06.25 07:57 수정일 : 2024.06.25 10:34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에 세워진 비목, 그 날의 아픔은 이제 가곡 속에만 남아 있다.


 

  강원도 화천의 최북단 백암산 정상엔 이제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있다. 전망대가 세워지기 전 백암산 정상에는 군인들이 투박하게 만든 비목공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임남댐(금강산댐)과 군관막사가 보이고 앞으로는 금성천, 오른쪽으론 북한강이 흐른다. 지금도 눈에 선한 곳이다.

  1964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한명희 선생은 백암산 OP에서 최전방 소초장으로 복무하면서 비무장지대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어느 날 작전을 하다 수풀 속에서 카빈소총에 얹혀져 있는 철모를 발견해 내무반으로 가져왔다. 6.25 당시 카빈소총은 장교가 사용하는 화기였으므로, 그는 소총과 철모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소위였겠구나 생각하며 잘 손질하여 내무반에 보관했다. 전역 후 동양방송에서 근무하던 한명희 선생은 작곡가 장일남 선생으로부터 가사를 요청받고, 문득 소초장 시절 일화가 생각 나 가사를 지어 보내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가곡이 '비목'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 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지금도 이 맘때면 백암산 남쪽아래 자리한 평화의 댐에서는 화천군이 주관하는 비목가곡제가 열린다. 이 행사가 있을 때면, 당시 이 곳에서 격전을 치뤘던 참전용사들이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며 고개를 숙인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북한강 계곡의 깊디 깊은 장엄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간이다.

  초연은 총이나 대포를 쏠 때 나오는 하얀 화약연기이다. 폭염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부모형제를 위해, 조국을 위해, 끝까지 적의 가슴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 산화한 용사들을 덮어 주던 푸근한 이불이 초연이었다. 그 초연 속에서 살아 남은 용사들은 먼저 간 전우의 시신을 뒹구는 돌멩이로 덮어, 거기에 소총을 꺼꾸로 꽂고 철모를 씌워 애도했다. 한명희 선생은 10년이 조금 지나 그 한 맺힌 애도의 징표를 발견했을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7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전쟁의 아픔은 우리사회 곳곳에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알 수 없는 곳에서 산화한 남편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긴 세월을 견디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비단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진 건 아니다. 전쟁을 불러 왔던 퀘퀘먹은 이념의 찌꺼기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대한민국의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사람이라면 살풀이라도 해서 풀어 낼텐데, 그 나마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모윤숙님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1951년의 헌시를 통해 6.25의 영웅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2024년 6월 25일 아침 가볍지 못한 마음으로, 폭염보다 더 뜨거운 조국애를 가슴에 품고 장렬히 산화한 선배 전우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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