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타자의 시각으로 우리의 것을 보려는 경향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도 이러한 소아병적인 지적 탐구 습성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런 반성에 터하여 이제 한국인의 정신적 인자를 찾아나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작성일 : 2024.06.09 04:58 수정일 : 2024.06.15 02:03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이제 한국인의 정신적 인자를 알아보자.
최치원은 우리의 종교 전통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난랑비서문(鸞朗碑序文)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玄妙之道)가 있는데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교(敎)를 세우는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삼교(三敎)를 포함하고 온갖 무리(群生)를 접하여 교화시킨다. 즉, 집안으로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집밖으로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 공자)의 뜻이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을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 노자)의 뜻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의 교화와 같다.(삼국사기 권4 진흥왕 37년 조(條))
한말에 미국인 선교사 Hulbert는 우리의 종교 현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인들은 마음 한구석으로는 불교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으나 어떤 때에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신적 미신을 믿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고, 고난을 당할 때에는 영혼 숭배자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항은 최치원이 풍류도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신앙을 언급한 ‘현묘지도(玄妙之道)’이다. 샤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옳은 이야기이다.
문제는 뒷 부분에 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불선이라는 프레임은 누구의 전통일까? 그것은 중국의 전통이다. 최치원은 자신의 시각이 아니라 중국인의 시각으로 우리 전통을 보려고 했다. 유불선에서 선(仙)은 도교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도교라는 종교가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에겐 도교 교단도 없고, 도사들의 조직도 없으며, 도교의 사원인 도관도 없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도교가 발을 붙이지 못했다. 우리 조상들의 유교 집착증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타자의 시각으로 우리의 것을 보려는 경향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도 이러한 소아병적인 지적 탐구 습성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Hulbert는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선말의 종교 현실을 비교적 적절하게,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우리 종교의 전체적인 구도를 유불선(儒佛仙)이 아니라 유불무(儒佛巫)라고 주장한다. 한국인이 신봉하는 종교 목록에 흔히 미신이라고 무시하던 무교(巫敎)를 포함시킨 점이 인상적이다.
Hulbert는 ‘한국인은 고난을 당할 때면 영혼 숭배자가 된다’고 했다. 북방 유목민족의 샤머니즘이 농경민족의 애니미즘적 관행과 결합되어 우리 문화로 정착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의 고유 사상과 문화를 설명하면서 우리 것은 텅 빈 상태이고 중국의 영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적인 뿌리를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이런 반성에 터하여 이제 한국인의 정신적 인자를 찾아나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이 탐구 작업은 종교가 발전하기 이전에 ① 우리의 삶의 터전인 시베리아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의 자연환경적 요소, ② 역사의 여명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래된 시조 신화, ③ 우리 민족이 형성되면서부터 사용했던 고유한 우리말을 분석하려고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쪽 뿌리였던 기마·유목민족은 광활한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에서 살았다. 그들은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천손강림신앙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목축업과 이동생활을 하면서 ‘역동성’을 기르게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뿌리였던 남쪽의 농경민족은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척박한 땅을 농토로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에 굴하지 않고 버티던 습관이 ‘불굴의 끈기’로 체질화되었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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