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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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역학 변화의 장주기(長週期)에서 오늘의 좌표는?

제21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ㆍ일 공동안보선언에 한발짝 접근했다.

작성일 : 2024.06.05 11:43 수정일 : 2024.06.06 06:39 작성자 : 백자성 (100j-star@newssisun.com)


신원식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 계기 한ㆍ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과 악수하고 있다.  ⓒ 세계일보


  샹그릴라 대화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관하고, 세계 각국 국방장관들이 참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안보회의이다. 원래 명칭은 아시아안전보장회의(ASC, Asian Security Council)이며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및 유럽지역에 국방 및 군사분야의 최고위급 협의체를 설립하고자 하는 IISS와, 지역 다자안보협력을 주도하려는 싱가포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시작되었다. 회의 창립 이래 매년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회의가 개최되고 있어 샹그릴라 대화라 불린다.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러시아, 호주, 독일 및 아세안 국가들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럽지역 30개국의 국방장관, 합참의장, 안보전문가 등이 참가하고 있다.

  올해로 21번째인 샹그릴라 대화는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는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 우크라이나·가자지구 전쟁, 북한 도발 등 여러 국제 현안을 놓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사흘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특히, 마지막 연사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연설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중국이 다른 국가와 지도자들에게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중국 같은 독립적인 강대국이 푸틴의 도구라는 것이 유감스럽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개막연설에서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남중국해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한 비전이 있지만 다른 주체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라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을 겨냥했다.

  이번 회의가 끝난 후 우리 국방부는 한ㆍ미ㆍ일 국방장관회담에 촛점을 맞춰 회담결과를 언론에 제공했다. 그 핵심은 "첫째, 3국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관련된 유엔안보리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3국 간 안보협력의 지속적인 의지를 확인했다. 둘째,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러시아의 부당하고 잔혹한 침략전쟁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3국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셋째, 인도-태평양 해역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하게 반대하며, 최근 중화인민공화국의 불법적인 남중국해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과 관련하여 각국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라고 설명했다. 보도자료의 마지막에 "대한민국과 일본은 공동의 안보 목표를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데 양국 관계와 한ㆍ미ㆍ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였다"라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반면에,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한국과 일본 의장(chair)으로 있는 빅터 차(Victor Cha)와 크리스토퍼 존슨(Christopher B. Johnstone) 박사의 분석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서 신원식 한국 국방부 장관과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이 2018년 이래 긴장관계에 놓여 있던 양국 국방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사실을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로 평가했다. 그들은 그렇게 평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오랫동안 양국 안보 협력의 주요 기반이었던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도쿄와 서울 간의 전략적 수렴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간 안보 협력 네트워크의 심화가 단순히 미국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유기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즉,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 질서라는 공동의 원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렴"을 수호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가진 파트너들이 함께 모이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셋째, 교전 규칙을 만들고, 종종 서로 근접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두 군대 간 사고발생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수립했기 때문이다. 넷째, 양국의 국내적 지지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지도자들이 이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지속적인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국제구도에 블럭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블럭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또다른 블럭이 그 실체이다. 그 사이에 문명을 매개로 한 또다른 블럭이 형성될 기미도 보이기는 하나 아직은 이 두 블럭의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블럭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매개는 정치적 가치와 규범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생각이 같은 국가들이 공통의 블럭을 형성해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적 역학의 변화곡선에서 오늘 날의 좌표는 바로 이 지점에 설정되고 있다. 하지만, 8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 좌표는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체주의국가와 비전체주의국가와의 대결구도였다. 비전체주의국가들 내에서 정치적 가치와 규범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도 이러한 가치의 혼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규정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와 규범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것을 수호하는 일이 가장 큰 국가이익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는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할 의도를 품을 정도로 막강해지지 않는다면 미국이 이 지역에서 철수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 시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에서 중국의 의도가 좌절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도래하더라도 중국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강대국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와 경쟁해야 하는 지정학적 상황에 여전히 갇혀 있는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에 있어 대한민국의 사활적 국가이익을 위해 우리는 현재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픈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상당한 수준의 반일정서가 남아 있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그 아픔을 직접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니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친중정서가 남아 있음을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중국대륙에서 명나라가 멸망한 후 조선에서 일었던 소중화론을 언급하기에는 중국이 너무 멀리 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적 현상을 떠나, 우리의 상황은 현실적으로 국제적 역학 변화의 장주기(長週期) 속에서 좌표를 옮겨가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주기 속에서 새로운 좌표가 자리매김 하고 있고, 또다른 좌표로 옮겨갈 준비를 해야할 시기이다. 이번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ㆍ일 국방장관이 이끌어 낸 합의사항을 그러한 준비과정의 한 산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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