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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에 따라 5월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지품을 들고 라파에서 피신하고 있다. ⓒ AFPㆍ연합뉴스 |
지난 5월 6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최남단 라파(Rafah)에 대한 지상공격을 감행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는 공격이 시작된 뒤 약 60만 명이 라파에서 대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마도 하마스의 뿌리를 뽑기 위한 최후의 작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마스의 뿌리를 뽑아내면 아마도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한 주권을 확립하여 유대민족의 완전한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팔레스타인 차지정부가 통치하는 아랍민족과의 공존을 꿈꾸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것 만큼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부터 깊어진 양 민족간의 갈등은 종교에 바탕을 둔 정체성의 충돌, 다시 말해 문명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랜 역사 속에서 정치적 야망이 겹쳐 오늘의 비극이 잉태되었다. 만약 팔레스타인에 국가라는 존재가 없다면, 두 민족이 1948년 이전처럼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유대 민족과 아랍 민족은 모두 셈족(Semites)으로 전혀 다른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국가의 부재가 민족의 비극을 가져왔음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이다.
1948년 1차 중동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90만 명이 유랑민으로 전락하였으며, 이들 중 약 30만 명이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지로 피신하였다. 1967년 4차 중동전쟁 때도 약 30만 명이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그리고 그 밖의 지역으로 피신했다. 이번 라파공격으로 인해 이 지역을 떠난 6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인 중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집트로 피신했는지 모른다. 팔레스타인인의 인도적 상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중동의 상황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작년 10월 7일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폭격, 보복의지 표출을 목적으로 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 군사적 능력을 과시한 이스라엘의 선별적 타격 등으로 최근 중동의 정세는 악화일로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전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의 중재와 외교적 파상공세에 힘입어 현상유지를 위한 상황관리는 가능해 보인다. 이란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전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더 큰 충돌이 헤즈볼라의 더 극렬한 공세를 불러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등의 적절한 외교적 개입이 작용한다면 양국 간의 긴장된 휴전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이스라엘의 라파공격에 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통로였던 라파지역을 공격함으로써 이미 팔레스타인인의 인도적 상황이 임계점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스라엘의 표현처럼 하마스의 뿌리가 뽑힐 지경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란과 그 동맹국들에게 행동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아직까지 이스라엘이나 이란 모두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군사적 방법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은 역내 모든 국가를 소용돌이로 몰아 넣을 것이다. 특히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등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 갈 것이며, 걸프국가들도 경제와 안보에 있어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중동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미국의 계획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우선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규모와 역할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대이란 작전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등에 대한 이란의 위협을 완화하기 위해 미군의 주둔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존 홉킨스 대학 나스르(Vali Nasr)교수는 5월 14일자 포린 어페어즈 에세이에서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둘째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4월에 팔레스타인의 유엔가입을 논의했으나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5월 10일 유엔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유엔가입 결의안이 143개국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바 있다. 나스르 교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완성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봤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축출되고 친이란 성격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지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의 민족주의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정식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유엔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두 민족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 민족, 아니면 두 국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마스가 선거에서 집권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은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이 종교적 원리주의에 가깝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떠한 상황이든 긴장과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어 보이며, 오직 공포의 균형만이 이 지역에서 긴장된 평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동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