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민족의 표상이 바로 ‘솟대’다. 기마·유목민족이 누비고 다녔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솟대가 발견된다.
작성일 : 2024.05.13 12:13 수정일 : 2024.05.26 11:38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솟대에서 북방계 유목민족의 유전인자를 찾아보자.
멀리 시베리아로 눈을 돌려보자. 저 머나먼 바이칼호 주변 브리야트에 가보면, 한국인과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곳에선 옛날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일부러 ‘개똥이’ 하는 식으로 천하게 부른다. 그 곳 사람들은 아리랑을 들으면 이것은 우리 가락인데 하면서 놀란다.
이렇듯 우리가 북방계통의 민족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다. 북방민족의 표상이 바로 ‘솟대’다. 기마·유목민족이 누비고 다녔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솟대가 발견된다. 솟대는 중앙아시아로부터 동북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민속현상이다.
중앙아시아의 알타이 지역, 북극지방의 야쿠티아, 바이칼 호, 몽골 지역 사람들의 신조(神鳥)사상이 그 뿌리다.
솟대의 구성을 보면, 신목이라는 나무 위에 새가 앉아 있는데, 이 새는 인간의 생명 또는 영혼을 인도하는 신조다. 신조는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에 있는 절대자인 신을 향해 복을 받기를 기원하고, 소원을 빌 때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한국의 경우 강릉 단오제에 세우는 솟대는 3마리의 새가 앉는 것이 보통인데, 이 새들은 모두 철새이고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이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잠시 월동하러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새들에게 한국인의 간절한 소원을 실어 보내는 과정이 솟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닐까?

<출처: 동아일보>
솟대가 지상의 유물이라면 지하의 고분에서도 이런 모습이 발견된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아타(현재 알마타) 동쪽에 있는 이씩(Issyk) 지방의 고분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경 스키타이 시대의 순금으로 덮인 갑옷을 입은 황금인간이 발견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여성 전사다. 이 여전사는 모자 왼쪽에 금으로 만든 핀을 꽂고 있고, 그 핀은 나무위에 새가 앉아 있는 한국의 솟대와 똑 같은 모양이다. 한편 그 나무는 신라 금관의 디자인과도 똑같은 모양이어서 더욱 놀랍다.
이처럼 솟대의 분포를 통해서 솟대문화를 가진 기마·유목민족이 저 멀리 알타이 주변에서 시작하여 바이칼 호, 동북아시아를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 시베리아 지역에서 살던 기마·유목민족이 남긴 고대 유물과 한반도의 유물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를 알아보자.
KBS 역사스페셜 ‘신라의 왕족은 흉노의 후예인가?’ 라는 다큐멘터리(2009. 7. 18일)에 따르면, 기마·유목민족과 한반도의 문화의 맥은 ‘샤먼(무당)’, ‘적석목곽분’, 구리 솥인 ‘동복(銅腹)’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샤먼(무당)의 분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샤먼(shaman)’은 시베리아의 퉁구스어로 엑스터시(ecstacy) 상태에서 총명함을 얻는 종교적 능력자 ‘사만(saman)’에서 유래되었다. 이 샤먼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교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샤먼은 인간 세상과 신의 세계, 산 자(生者)와 죽은 자(死者)간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하고, 수호신으로부터 받은 힘으로 예언을 하고 질병을 치료한다.
알타이 문화권에서 신화는 대개 「나무 – 새 – 엑스터시 – 위대한 샤먼의 탄생」의 형식을 취한다. 고대 신정일치(theocracy) 사회에서 샤먼은 오늘날과 같이 무시당하는 신분이 아닌 정치적인 영웅이었다. 단군 제사장이 무당이었고, 삼국사기에서 박혁거세의 아들인 남해차차웅도 무당이었다는 사실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차차웅은 신라말로 무당을 가리킨다.
샤먼은 행동문화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래서 시베리아 지방에 널리 남아 있는 무당의 흔적을 통해 시베리아와 우리 사이에 문화의 맥을 확인할 수 있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위치한 초승달 모양의 바이칼 호 주변의 도시 중 하나가 이르쿠츠크인데, 여기에 있는 민속 박물관에 샤먼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샤먼의 옷은 가죽 모자와 가죽 두루마기로 구성되어 있다. 모자는 신라의 서봉총에서 나온 여자 주인공의 모자와 유사하다.
극동의 흑룡강 주변의 하바로프스크 민속 박물관에도 그 지역 토착민인 나나이족 샤먼의 두루마기가 있는데, 거기에 달려있는 허리띠가 신라왕족의 허리띠와 매우 유사하다.
샤먼에 이어 이제 북방 유목민족이 공유하는 문화의 맥인 ‘적석목곽분’에 대해서 알아보자. 시베리아에서 말을 타고 활보하던 기마·유목 민족의 무덤형태가 적석목곽분(Kurgan)이다. 이 무덤은 나무로 만든 관에 시체와 부장품을 넣고 나무 덧널을 씌운 다음 그 위에 돌무더기를 두껍게 덮어놓은 형식이다.
Rudenko라는 고고학자는 알타이 산맥의 북쪽 고원지역에 위치한 파지리크(Pazyryk)에서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고분을 발굴하여 많은 양의 유물을 찾아냈다. 여기에서 적석목곽분(Kurgan)이 발견되었다. 그는 삼림지대의 원주민들은 통나무집인 ‘타이가 하우스’의 기본형을 적석목곽분의 무덤방에 그대로 적용한 사실을 밝혀낸다. 초기 금속기 시대의 족장급 주인공이 사후에 통나무집에서 생활하도록 집을 짓고 그 집 위에 돌을 쌓았던 것이다. 이런 유사한 구조는 카자흐스탄의 이씩(Issyk) 지방의 고분에서도 발견된다.
적석목곽분은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발견된다. 황남대총은 내물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데, 지금부터 약 1700년 전 쯤 만들어졌다. 두 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으며 높이는 23미터, 길이는 120미터에 이르는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이 고분을 발굴하면서 흙을 파내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발굴한 결과 금관을 비롯한 신라시대의 화려한 황금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신라 고분 중 가장 많은 금제 유물이 출토되었다.
여기서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황남대총의 무덤 구조였다. 북방계 유목민족 특유의 적석목곽분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양식이 신라의 내물왕계가 중앙아시아에서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파지리크 고분과 신라 왕족의 무덤은 시간적으로 약 800년가량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같은 구조의 무덤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같은 계열의 민족들이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살았지만 비슷한 사유세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기마·유목민족의 맥을 ‘동복(銅腹)’을 통해서 살펴보자. 동복은 속이 깊이 파인 구리(청동) 솥이다. 스키타이 인들은 콜드론(Cauldron)이라는 동복을 말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추운 지방에서 살았던 기마·유목민족이 왜 이런 콜드론을 사용하였을까? 국물을 끓여 먹기 위해서였다. 유목민족의 무덤에서는 예외 없이 이런 동복이 출토된다. 따라서 어떤 무덤에서 동복이 발견되면 유목민의 유적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러한 동복이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신라와 가야의 지배계급이 기마·유목민족의 전통을 간직한 그들의 후예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참고】김해시 대성동 29호분에서 출토된 유목민 솥단지인 동복(銅腹)이다(높이 18.2㎝/ 국립김해발굴관).

이와 같은 기마·유목민족의 동복 문화권과 달리, 중국의 고대 은나라와 주나라에서는 네발이 달린 청동제 방정(方鼎)이 발견된다. 방정은 농경인들이 만들었다.
이 두 문화권의 차이는 나중에 흉노와 한족간의 대결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반도에서 중국식 방정이 한 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의 역사가 중국민족의 문화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민족의 시원문화는 기마·유목민족의 문화에 기초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고학은 말해 주고 있다.
【참고】중국 은나라 시대의 방정(方鼎)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샤먼(무당), 적석목곽분, 구리 솥인 동복(銅腹) 외에도 언어학 연구결과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지역과 한국과의 인종적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언어적으로 보면 한국어와 투르크어, 몽골어, 만주 퉁그스어, 일본어는 비슷한 점이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동물을 국가의 상징으로 한 것은 고대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고대 국가 중 하나인 부여(夫餘)라는 이름은 만주 퉁그스어의 bugu에 해당되며 사슴을 의미한다. 백제의 고이왕도 kony로 발음되는 투르크어로 염소를 나타낸다. 샤먼이 복을 비는 굿(Kut)이란 말도 행복·행운이라는 뜻의 알타이어이고, 투르크어, 퉁그스어에도 나타난다.
고구려 졸본성의 졸본(Colbon, Cholbon)은 투르크어와 퉁그스어의 colpon과 동일한 단어로 그 의미는 새벽별이다. 신라의 각간(角干)은 투르크 왕의 칭호인 Kagan과 동일하다. 박혁거세의 혁거세도 투르크어의 kÖk kishi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며 kÖk은 본래 하늘을 뜻하고 거룩함, 힘 등을 상징하며, kishi는 국가의 지도자란 의미이다.
이처럼 우리의 여러 단어들이 중앙아시아의 단어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표기를 한자로 하고 있어 발음의 유사성이 퇴색되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우리민족과 기마·유목민족간의 관계를 ‘천손강림신화’를 통해서 알아보자. 자기 조상의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신화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국인의 경제생활 방식은 남방계(남아시아) 중심의 농경생활이었고, 정신세계는 북방계(북아시아)의 경천(敬天)사상이 지배해왔다. 농경문화의 상징이 고인돌이라면, 경천사상의 상징은 무형 문화유산인 솟대다.
솟대가 발견되는 지역에서 천손강림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천손강림신화는 몽골족, 알타이 민족, 스키타이족 등 기마·유목민족의 지배층들이 그들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스토리텔링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신화 구성방식은 한반도에 똑같이 이어진다.
하늘에서 성인이 내려와 통치자가 되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날아온 말이 놓고 간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 신화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북방계의 천손강림(天孫降臨)신화 민족과 남방계의 난생신화(卵生神話) 민족이 한반도에서 서로 만나 그들의 신화를 재미있게 혼합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이 함께 살면서 융통성을 발휘하여 통합적 신화를 구성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글 난생신화와 천손신화의 만남을 소개한다.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말(馬)이 놓고 간 알(卵) 속에서 나온 아이였다. 말은 기마 민족의 상징이요, 알은 난생신화의 핵심 요소 아닌가. 한 사람의 탄생 신화에 천손신화의 요소와 난생신화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이상한 현상이 관찰되는 것이다. (중략) 오늘날에도 각종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기독교인인 후보자가 불교 사찰에서 거행되는 부처님 점안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중략)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치권으로 부상하고 싶은 사람들은 눈물겨울 정도로 변신술에 능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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