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선진화에 걸맞는 기회균점주의와 창발적 역동성을 발휘하는 선진적 정치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작성일 : 2024.04.20 03:34 수정일 : 2024.05.09 09:55 작성자 : 정치에디터 박세미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 간의 ‘한국형 선순환 발전’ 모델
한국인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초과하여 달성하였다. 세계가 놀란 것은 경제와 정치 혁명이라는 두 가지 기적을 거의 동시에 이뤄냈다는 데 있다. 하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서 이룩한 경제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이후 이루어 낸 정치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고도화이다. 지구상에는 이 두 가지 과제 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나라가 아직도 많다. 그 나라들은 낙후된 상태에서 가난과 억압 속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초 82달러에 불과했던 일인당 국민 소득이 이제 3만 달러에 육박하게 되었다. 경제 성장도 놀랍지만 정치사적 측면에서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불과 10년 만에 민주주의의 터전을 공고하게 다진 아시아 최초의 국가가 아닌가··· 한국인은 선거를 통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규범을 내면화한 지 이미 오래다.
먼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숱한 정치적 고통들을 감수해야 했다. 8·15 광복 이후 나라의 틀을 잡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오랜 독재 끝에 학생 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했다. 경제 기적을 일구면서 장기 집권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 또한 부하의 총에 피살되면서 독재 정치의 막이 내렸다. 박정권 18년 동안 경제 성장이라는 찬란한 빛이 있었다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그림자가 있었다. 빛이 크면 그림자도 커지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이후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또 다른 군부 세력에 의해 짓밟히고 만다. 군인 정치가 연장된 것이다. 1980년 전두환은 계엄령 선포 등 공포감을 조성한 후 1981년 간접 선거를 통해 변칙적으로 집권하게 된다. 6년 후인 1987년 전두환은 그의 육사 동기인 노태우에게 권위적인 정권을 물려주려는 시도를 한다.
이런 음습한 움직임에 대해 학생들을 비롯한 온 국민이 길거리로 나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였고, 소위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직장인들이 시위에 가세하는 6·10 민주 항쟁이 일어난다. 이에 전두환과 노태우는 6·29 선언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헌을 약속하면서 무릎을 꿇게 된다. 1987년 6월 10일을 기점으로 민주화의 공고화가 진행되는데, 이때부터 1997년까지를 ‘87체제’ 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권위주의 독재 정권하에서 30년을 저항하던 우리 국민은 1990년대에 들어 5년마다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을 맞고 명실상부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에서 등잔 밑이 어두웠다. 2016년 말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가 급기야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다. 무력이나 혁명적인 수단이 아닌 제도적 장치에 의해 대통령을 탄핵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정을 농단한 무능한 대통령을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끌어내렸다. 정치권력을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민주적으로는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에 탄핵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협상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방법이 더 성숙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60년대로 돌아가서 경제 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땅속에서 중석(重石)을 캐서 세계 시장에 내다 팔고,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팔았던 그때, 그 빈곤에 찌든 나라가 이제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었다. 지구촌 어느 시장에 가도 우리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도 가장 각광을 받는 제품들이다. 삼성 스마트폰, 전자 제품, TV, 현대·기아차, 각종 화학 제품, 반도체 등이 우리의 대표 상품이 아닌가. 이외에도 수백 가지 상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 않는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우리는 시대 상황에 맞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세계 시장을 개척해 왔다. 서구 선진 국가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힘겹게 이룩한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의 이행을 우리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단 한 세대 만에 완성했다.
60년대 초 수출 품목이라곤 지하자원밖에 없었던 척박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섬유와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수출하였다. 70년대 들어 경공업 중심의 허약한 경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공업 국가로 변신하여 산업화에 성공한다.
하지만 굴곡도 많았다.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고비였던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우리는 관치 경제에서 벗어나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여·야 간 정권 교체를 최초로 이룬 김대중 정부는 기업 주도의 자유 경쟁 원리에 입각한 시장주의를 제도화하였다. 이때부터 ‘97체제’의 막이 열린다. 이 시기에 정부는 관치 금융 구조를 과감하게 개혁하고, 새로운 경제 운영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97체제’하에서 한국은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반도체, 건설, IT, BIO 등 어느 한 분야에서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즉 굴뚝 산업과 첨단 산업이 고르게 발전한 선진 공업국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정보 통신 일등 국가로서 생명 공학, 뇌과학, 대체 에너지, 하이퍼 농업 등 미래 먹거리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정리하면, 성장한 경제는 정치 민주화의 토대가 되었고, 민주화된 정치는 다시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정치·경제의 선순환을 이룩한 자랑스런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일찍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정치·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킨 ‘87체제’ 그리고 시장주의를 완성했던 ‘97체제’는 큰 자부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2017년에 일어난 촛불 혁명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한층 높게 업그레이드하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겨 주었다.
우리가 현대사를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는 번갈아 가며 서로를 한 단계씩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경제 발전에서 찾으려고 했고, 그 결과로 이뤄진 경제 발전은 정치 분야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그것이 바로 ‘87체제’다.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를 손잡아 끌어올려 주었다.
뒤이어 민주 정부는 관이 주도하는 시장을 ‘기업이 주도하는 자유 경쟁 시장’으로 전환하였다. ‘97체제’다. 성숙된 정치는 경제를 손잡아서 끌어올려주게 된다. 시장주의 발전이 뒤따르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체제’의 문을 열어야 한다. 경제 선진화에 걸맞는 기회균점주의와 창발적 역동성을 발휘하는 선진적 정치체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제 우리는 계속되는 대통령제의 폐해를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개헌을 통해서 집중형 권력 구조를 분산형 권력 구조로 바꿔 정치에 다양성을 부여해야 한다. 기회와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대통령 한 사람이 이끌어 나갈 수준의 국가가 아니다. 집단 지혜로 세계 으뜸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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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국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을 소개한다. 프랑스의 석학(碩學) 기 소르망 전 파리정치대학 교수가 2018년 7월 12일 국회가 주최한 ‘제헌 70주년 국제학술대회’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의 대통령제를 ‘선출된 독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은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선출된 독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출된 독재가 대통령의 성격이나 성향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한국의 제도 자체가 권한 남용을 유도할 여지가 있다.”며 “권력의 견제와 균형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민주주의(정치)와 시장주의(경제)가 순차적으로 서로를 향해 발전을 촉진시키고 견인하는 역할을 한 ‘한국형 정치·경제 간 선순환 발전 모델’의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시장주의) 간의 ‘한국형 선순환 발전 모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제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 사회에서 다양성을 유지하며 선진경제의 번성을 계속 이끌어갈 새로운 정치체제가 시급하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헌정구조를 구상하여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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